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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07. 2022

밤이 주는 위로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려고 누웠는데, 이상하게 잠은 오지 않고, '자야지, 자야 하는데~~' 하면 잠이 더 안 오는 그런 상황 말이다. 깜깜한 밤, 주위엔 아무도 없고 오직 나 혼자만이 있는 공간, 방을 환하게 밝혔던 불도 꺼졌다. 주변에는 적막만이 흐르고, 어느덧 어둠에 익숙해지면 나만 깨어 있고 다른 모든 것은 정지된 것만 같다. 그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좀 더 넓은 집에서 살기를 원하지만, 실상 자려고 누우면 그렇게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내 몸 하나 누울 공간, 자다가 뒤척여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잘 때처럼 어둠이 지배하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 낮에 보았던 그런 공간은 아무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보여서 문제인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맞다. 내 한 몸 눕기에 딱 이 정도만 필요한 거였다. 실상 자는 데는 그렇게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으니 오히려 넓은 곳에 누워 있으면 잠이 더 안 올 듯싶었다. 밤이 되면 모든 사람은 비슷한 면적의 공간에서 자기 때문에 밤은 낮보다 공평하다.




밤에 하는 활동도 그렇다. 밤에 할 일이라고 해봤자, TV를 보거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정도가 아닌가.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밖에서 모임을 할 수도 있고, 흥겨운(솔직히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시간을 보낼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그런 생활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그러고 살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그렇게 살아도 일정한 시간이 되면 자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보통 사람들의 밤 시간이 대략 비슷하니, 밤이야말로 인간의 평등을 실현하기에 딱 맞는 시간인 셈이다. 보이지 않으니 무슨 옷을 입었는지 알 수 없고, 특히 잠옷은 입는 사람도 있고 안 입는 사람도 있어 그런 개인의 취향까지 감안하더라도 대략 차림새 또한 비슷하다.


세수를 하지만 잘 때 진한 화장을 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낮에 했던 화장을 지운다. 낮에는 꾸미고 밤에는 꾸밈을 벗는다. 밤은 나를 드러내는 솔직한 시간이다.


중요한 건, 잠이 들면 꿈을 꿀 지언정 어떤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거다. 꿈이라고 해봤자 워낙 레퍼토리가 다양해서 그것마저도 평등하다. 부자라고 항상 좋은 꿈을 꾸는 것이 아니고, 돈이 없다고 항상 곤궁한 꿈을 꾸는 것도 아니다. 낮에는 부자지만 밤에는 가난해질 수 있다. 그 반대도 가능하고.


나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대학입시나 사법시험에 떨어지는 꿈을 여러 번 꾸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수학 문제가 하나도 안 풀리지. 이 문제는 내가 공부한 범위가 아닌데, 이번 시험은 망했네, 하면서 깬 적이 여러 번이다.


비록 가끔 그런 원하지 않은 꿈을 꾸더라도 나는 낮보다는 밤이 편하다. 어둠이 깔리고 사위(四圍)가 조용해지는 시간, 누구를 의식할 것도 없다. 내가 뭘 하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런 순간이 나쁘지 않았다. 낮에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힘들 때도 있지만, 밤에는 뭘 안 해도 손해 보는 것 같지 않았다.




한편 가끔은 자려고 누우면, 너무 피곤해서 이대로 깨지 않고 영원히 잤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를 얽매였던 생각마저도 사라진 그 순간이 그대로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 심지어 죽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나마저도 지워지는 그래서 완전히 무의식의 상태에 빠지는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인생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힘든 시기를 이미 통과했거나 지금 통과하고 있거나 앞으로 통과해야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이 밤이 주는 위로를 느꼈으면 좋겠다. 밤은 그런 걱정과 근심, 염려까지도 흡수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오늘 밤부터 모든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편안히 잠을 청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잠이 들면 나도 모르게 모든 게 지나가버린다. 혹시 아는가? 자면서 그 고민이나 걱정이 모두 해결될지를. 그렇지 않더라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잘 자면 걱정, 근심도 리셋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거다.




세상 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 세상에 시선을 맞추면 나만 괴롭고 힘들어진다. 그런다고 세상이 나를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그 시선을 나에게로 향하고, 내가 지금 처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내면이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 정신이 넓어지고 감성이 깊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늙는 것은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이지만, 낡아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건 바로 우리 정신이며 내면이다. 나이가 들어도 나를 충만하게 하는 방법을 찾으면 열패감(劣敗感)을 덜 느끼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엔 밤만큼 좋은 시간도 없다. 그야말로 방해받지 않고 나를 나답게 채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밤이 되면 더 외로워진다. 누구랑 같이 있어도 본연의 외로움은 여전히 남는다는 것,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것, 밤 시간만큼 우리에게 이 사실을 절실히 일깨워주는 것이 또 있을까. 나는 어려서부터 해질녘이 되면 왠지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한낮의 해가 노을로 변해 산자락을 뉘엿뉘엿 넘어가려고 하는 순간이 되면 쓸쓸해지지만, 한편으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평안이 밀려왔다. 아, 이제 집으로 가는구나, 하면서.


그러고 보니 이 글도 밤이 깊은 시간에 쓰고 있다. 이래저래 나는 밤이 좋다.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낭만주의 이후의 문학, 특히 시는 이 밤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다. 시인들은 낮에 빚어진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말이 "어둠의 입"을 통해 전달되리라 믿었으며, 신화의 오르페우스처럼 밤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걸어 들어가 죽은 것들을 소생시키려 했다.


그렇다고 반드시 이성 그 자체를 불신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성을 빙자하여 말과 이론과 법을 독점하고 있는 사회와 제도의 횡포에 있다. 낮에 잃은 것을 밤에 찾기란 결국 그 횡포의 희생자들을 복권하는 일이며, "어둠의 입"이 해줄 수 있는 말이란 현실에서 통용되는 말의 권력을 넘어선 역사의 말이자 미래의 말이다."


<황현산 _ 밤이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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