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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10. 2022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여전히 꽃이 피어 있는 곳도 있지만, 어느덧 꽃이 진 곳이 더 많아졌다. 모든 꽃이 그런 건 아니지만 꽃은 대개 10여 일 남짓 피었다고 지고 만다. 꽃 중에서 열흘 이상 생명을 유지하는 건 드물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만큼 꽃은 생명이 짧은 것이다.


꽃은 떨어지기 직전의 순간이 절정이다. 곧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아쉬운 마음으로 봐서 그렇기도 하지만, 지는 순간이 꽃이 가장 활짝 피었을 때이기 때문이다. 바람에 흩날리면서 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제 더는 꽃으로 볼 수 없어서, 꽃으로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피는 것도 한순간, 지는 것도 한순간, 마치 순식간에 무너지는 눈사태처럼 자신의 생명을 극한까지 올렸다가 순간적으로 불꽃처럼 사라지니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은 시간 차이만 있을 뿐, 우리 인생을 많이 닮았다. 어쩌면 우리가 꽃을 닮은 건지도 모르고. 꽃이 지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어제 꽃이 진 흔적을 보고 안타까움을 넘어 사뭇 비장미까지 느껴졌다. 저렇게 허무하게 떨어지려고 그토록 아름답게 피었단 말인가. 꽃을 잉태한 꽃눈이 이미 지난해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꽃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한 송이 꽃으로 피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낸 셈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기사, 소설가 이순원씨에 대한 일화이다. 그는 어릴 때 제법 글솜씨가 있었는데도 백일장에서 아무 상도 못 받고 돌아온 적이 있다고 한다. 크게 낙담하고 있는 그에게 선생님이 해준 말이 이랬다.


"일찍 꽃을 피우는 나무는 눈길을 끌지만, 일찍 피는 꽃들은 나중에 열매를 맺지 못한단다. 나는 네가 어른들 눈에 보기 좋게 일찍 피는 꽃이 아니라, 이다음에 큰 열매를 맺기 위해 조금 천천히 피는 꽃이라고 생각해. 클수록 단단해지는 사람 말이야."


그렇게 그는 선생님의 조언을 힘입어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다. 봄날, 힘들거나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봄이 봄같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화려한 봄꽃이 피는 걸 보고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 더 절망스러울 수도 있다. 모두들 봄이라고 화려한 옷을 입고 꽃놀이를 다니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한숨만 쉬고 있어야 한다면 봄이 원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만약 지금 그렇다면 김종해 시인의 시 <그대 앞에 봄이 있다>를 읽어보면 어떨까. 상처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는 것이 온통 상처투성이인 것을.


삭막했던 겨울 동안 꽃눈을 품고 있다가 이 봄에 꽃을 피운 나무를 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꽃을 피울 날이 오리라고 믿어야 한다. 혹시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삶 자체가 무엇보다 존재 자체가 이미 한 송이 꽃임을 다시 또 믿어야 한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김종해 _ 그대 앞에 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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