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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빛은 그렇게 오지 않았다

by 서영수

세상 어딘가에 어둠이 도사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었다. 하늘은 투명했고 공기는 가벼웠다. 눈부신 날씨 아래, 모든 것이 잠시 현실감을 잃었다.


5월 초, 긴 연휴가 끝난 첫 출근 날이었다. 어쩐지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낯선 꿈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익숙했던 일상의 풍경이 어긋나 있었다. 점심 무렵, 잠시 사무실을 벗어나 목적 없이 걸었다. 거리엔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고, 그 적막함이 지금의 나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늘 무심히 지나치던 골목, 창문들, 마른 나뭇가지에 매달린 햇살조차 낯설게 다가왔다.


한때는, 지금보다 더 깊이 나 자신 속으로 파고든 적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감정의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길을 잃은 사람처럼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가 <인간 실격>에서 쓴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고백처럼 그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움, 두려움, 자기혐오 같은 감정들이 나를 단단히 묶고 있었다.


빛을 찾아 헤맸지만, 끝내 허공만 맴돌 뿐이었다. 생각을 떨쳐내려 애쓸수록 오히려 생각 속에 더 깊이 갇혔고, 고요함은 오히려 고통이 되어 나를 흔들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빛은 억지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서 조금씩 벗어났다. 그러자 어둠도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다가오는 빛이 아니라, 내 안에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빛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인간은 본래 빛과 어둠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때로는 어둠을 선택하지만 때로는 어둠에게 선택당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서 한 걸음 물러설 때 비로소 내면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물론, 아직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어둠 앞에서 여전히 흔들리고, 그 앞에서 길을 잃고 속수무책이 되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나를 감당하기 버겁다. 때때로 내가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무게 또한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면 껴안는 수밖에 없다. 어둠을 지나온 날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 맑은 아침이 더 눈부시다. 그 눈부심이야말로,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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