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알 때쯤에는, 정작 부모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그 사랑의 깊이를 깨닫고, 이제는 자신의 자식을 부모에게 받은 사랑으로 품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돌아가신 아버지와 연로하신 어머니를 떠올리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여전히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고 있고, 내 자식들을 내 뜻대로 이끌려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몇 해 전 읽었던 니콜 크라우스의 <위대한 집>에 나오는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소원해진 자식과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고 애쓰는 그의 모습은, 책 속 이야기라기보다는 마치 제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 많은 것을 느끼고 반성했지만, 그 후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습니다. 저의 한계입니다. 책을 읽고 자극을 받았지만 돌아서면 잊고 또다시 어떤 일이 생기고 나서야 잊고 지냈던 삶의 교훈을 불현듯 떠올리며 후회하는 그 한계 말입니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늘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습니다.
어제는 어머니의 전화 목소리가 유난히 힘없게 들렸습니다. 감기라고 하셨지만, 벌써 여러 날째시고, 목소리 사이사이에 고인 허전함마저 느껴졌습니다. 남편을 여의고 받으신 충격이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애증이 얽힌 관계였지만,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의 빈자리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겁니다.
그 빈자리를 자식인 제가 채워드릴 수 있을까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노력해야겠지요.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내 자식에게 건네는 일처럼, 지금 남은 시간 안에서 어머니 곁을 조금 더 지키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를 키워준 부모님의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방식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