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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일상

by 서영수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아니, 나는 걷는다, 고 말하고 거기서 끝내는 게 좋겠다. 그것은 캐스가 죽은 뒤 애도하던 처음 몇 달 동안 몸에 붙은 오랜 습관이다. 밖에 나가 산책을 하는 것의 리듬과 목적 없음에는 위로가 되는 뭔가가 있다.


나의 직업(그는 연극배우이다), 사실 마시 메리웨더(영화 제작자)가 각광, 아니 아크등, 아니 뭐라고 부르든, 그 조명 아래로 나를 다시 불러내기 전까지는 이미 은퇴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직업은 늘 나에게 낮시간의 자유를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느라 실내에 갇혀 있는 동안 밖에 나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어떤 미지근한 만족감이 있다.


아침나절이나 이른 오후의 거리에는 분명하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목적의 분위기가 감돌아서, 뭔가 중요한 일이 깜빡하고 일어나지 않은 느낌이다. 낮에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또 노인과 이제는 고용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도 빈 시간을 그냥저냥 보내며 상실을 다스린다. 아마도 내가 그러는 것처럼. 그들은 경계하고 약간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이다. 아마도 자신의 게으름에 누가 문제를 제기하는 게 두려울 것이다.


급하게 할 일이 없다는 데 익숙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분명하며, 그 아크등이 마지막으로 꺼지고 세트가 해제되면 나도 그것을 알게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세계는 내 상상으로는 추동력이 없는 세계다. 나는 그들이 타인의 바쁨을 부러워하면서, 구역을 돌아다니는 행운의 우편배달부, 장바구니를 든 주부, 밴을 타고 필요한 물건을 배달하는 하얀 가운 차림의 남자들을 분개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본다. 그들은 의도하지 않은 게으름뱅이, 길을 잃은 자, 어쩔 줄 모르는 자들이다.


<존 밴빌 ㅡ 오래된 빛, 126 ~ 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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