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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고 한여름이었다

by 서영수

"6월이고 한여름이었다. 끝나지 않은 저녁과 하얀 밤의 시간이었다. 소년으로 존재하며 세상의 그런 날씨 속에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내가 아직 너무 어려서 알아보지 못했던, 또는 인정하지 못했던 것은 한 해가 찬란한 절정에 오른 그때 이미 이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시간과 시간의 사라짐을 제대로 보았다면 아마 나의 심장을 가시처럼 찔러대는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렸고 시야에는 끝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여름의 슬픔은 무르익어 빛나는 사랑이라는 사과의 뺨에 번지는 희미한 혈색, 흐릿한 거미집 그늘에 불과했다."


<존 밴빌 ㅡ 오래된 빛>




인생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는 청년의 시간, 계절의 절정인 한여름. 모두가 '최상의 시간'이라 말할 만하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문제는 그 절정의 시간에도 쇠락의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는 거다. 우리만 몰랐을 뿐, 어쩌면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르고.


그때는 너무 찬란해서 나를 비롯한 모든 것이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그 안에 슬픔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눈부셨기 때문이다.


존 밴빌은 이제 장년이 된 화자의 시선으로 그 시절을 돌아본다. 우리가 시간이 흘러야만 비로소 지난 시절을 돌아보고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랬기에 더 찬란했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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