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추석 명절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마도 아닌데, 10월 중순에 이렇게 비가 매일 계속되니 날씨가 심상치 않다. 지금쯤이면 어디서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느니, 어느 산은 단풍이 절정이라느니 하는 소식이 들려올 법한데, 그런 소식조차 뜸하다. 내가 사는 거리의 가로수인 은행나무 역시 열매는 떨어졌지만 잎은 아직 노랗게 물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남부 지방은 한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치솟는 등 뒤늦은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자연이 계절의 리듬을 잃어버린 것인지, 이상 기후의 여파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문제는 비가 오면 행동이 제약된다는 것이다. 운동이나 산책을 하고 싶어도 쉽지 않고, 밖에 나가는 것이 번번이 망설여져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렇다고 집에서 뚜렷이 할 만한 일도 없어 답답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어제 낮, 잠시 비가 그치는 듯해 밖으로 나가 보았다. 잔뜩 드리운 먹구름과 눅눅한 공기 때문인지 걸음을 옮겨도 가을의 정취는 느끼기 어려웠다.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은 곧 다시 퍼붓겠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결국 멀리 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람은 날씨에 영향을 받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흐린 날이 길어지면 마음도 함께 흐려진다. 무엇을 해도 의욕이 나지 않고, 사소한 일조차 번거롭게 여겨진다. 해를 본 것이 언제였던가 싶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내 답답한 마음을 애꿎은 날씨 탓으로 돌리고 말았다. 지금 내 기분이 가라앉은 것도 결국 날씨 탓이라고.
지난 금요일 밤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에 대한 관세를 100퍼센트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미국 나스닥 지수가 급락했다. 정말 가지가지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제정 로마 말기의 질서 붕괴를 보는 듯하다.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고, 높은 관세로 물류의 흐름을 차단하는 모습에서 역사는 과연 반복되는 것인지, 한 시대의 퇴조를 목격하는 듯한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다.
인간은 어리석어 지난 역사에서 좀처럼 교훈을 얻지 못한다. 되풀이되는 사건들을 보노라면 인류가 정말 진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하긴, 인간의 역사만 그럴까. 정작 나 자신부터 돌아보면 과거의 실패와 상실의 기억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선뜻 말하기 어렵다. 설사 깨달음이 있었다 하더라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해보면 누구를 탓할 자격도 없다.
우중충한 날씨에 세상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삶은 버거워지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잠시 걸었을 뿐인데도 쉽게 피로가 밀려온다. 아무래도 집에 가서 한숨 자야겠다. 마음이 지치면 몸도 따라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