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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13. 2022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렘브란트/ 자화상


“숭고한 예술은 애정, 정신 그리고 영혼을 가지고 창조해 내는 작품이다. 그러한 예술작품을 창조해 내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그들의 충만한 정신과 삶에서 나온다.”


<빈센트 반 고흐>




어제는 주말 아침인데, 일찍 깼다. 아침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시간이 많으면 잠이 안오고, 시간이 별로 없으면 더 자고 싶고, 하루하루가 느리게 가고 있다.


세월은 빠른데, 하루는 느리다. 특별한 일이 없는 루틴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바뀌면 좋겠다. 거울 속 표정이 밝지 않다.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 따라 내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오래전,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평생에 걸쳐 응시한 화가가 있었다.


빛과 그림자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Dutch, 1606–1669). 그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그만큼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화가도 드물다. 그는 왜 자신을, 다른 모습으로, 그것도 시간을 달리해서 그렸을까?

30대 렘브란트 자화상, 1640년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 관장은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심지어 청소부와 거지로 분장한 자화상도 그렸고, 화를 내고, 행복해하고, 놀라고, 근심·걱정에 잠긴 여러 표정과 감정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관찰하기도 했다.


렘브란트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스스로 모델이 되어 많은 자화상을 그렸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존재가 '나'인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존재이면서도 가장 멀리 있는 존재. 너무 가깝다 보니 굳이 생각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고 그러다보니 더더욱 알기 어려운 신비로운 존재가 '나'이다.


치열한 자기 성찰의 흔적을 남긴 렘브란트를 비롯한 수많은 위인들은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알기 위해 노력했고, 끝내 다 알지 못해 절망했던 사람들이었다. 절망과 사색의 깊이는 그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림 속 그가 나한테 말하는 것만 같다. '너 자신을 보라고.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를? 가장 외면하고 싶은 순간에도 그런 자기 자신을 가만히 응시할 자신이 있는지?'를.

40대 렘브란트 자화상
50대 렘브란트 자화상

이 글을 페이스북에 쓴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나는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과거는 흘러가 버렸지만 그 흔적은 내 삶에 그대로 남아 있다. 렘브란트 역시 그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과 달리 이젠 나이가 들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그리면서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영광스러운 모습 뿐만 아니라 늙고 추해진, 그래서 더 잃을 것도 없는 불행해진 모습까지 그대로 남긴 그의 집념이 그림 속에서 느껴진다.


그는 끊임없이 빛을 찾았지만, 자기 생에 남겨진 그림자도 놓치지 않았다.

60대 말연의 렘브란트 자화상, 1661년

그는 신산스런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주름살마저도 자신의 자화상에 그대로 남겼다. 늙음이라는 현실, 무엇보다 삶이 주는 고통을 그대로 직시하기는 어려울텐데, 그의 치열한 자기 응시의 자세를 보면서 그가 부러웠지만, 한편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잠시 거울 속의 나를 보다가 바로 외면해 버리고 마는 나 자신에 대해서.





"오래전 누군가가 ‘살아지더라’고 말했을 때, 내게는 그 말이 ‘사라지더라’로 들렸다. 내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이 한동안 실제로 사라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들렸을지 모른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살게 되더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 괜찮다는 말, 어쩔 수 없지만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 그래서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니 어설픈 위로 따위를 듣지 않겠다는 말...."


<안규철 _ 사물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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