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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16. 2022

어떤 것에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으려면

할레드 호세이니 / 연을 쫓는 아이

길을 걷다가 두 남녀가 언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무슨 일로 싸우는지 모르겠지만, 한쪽에서 "품위 없게, 왜 그래?"라고 상대를 나무라는 듯한 말이 들려왔다. 잊고 지냈던 '품위'라는 말이 떠올랐다. 저들도 감정이 격해 있는 그들만의 극한 상황에서 '품위'를 말하고 있다. 도대체 '품위'가 뭐길래?


나는 품위 있는 사람인가? 존재를 위협받는 극한 상황에서도 그 품위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떠오르는 책과 영화가 있다.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 그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출신으로 일찍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의사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쓴 의사이자 작가이다. 그가 쓴 첫 번째 장편소설 <연을 쫓는 아이>, 왕은철 전북대 교수가 번역했고, 소설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해서 칼럼(전쟁의 품위)을 쓰기도 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방수포를 씌운 트럭을 타고 피란 길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검문소에 도착하자 젊은 러시아 군인이 다가온다. 그의 눈이 트럭에 탄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검은색 숄을 두른 젊은 기혼 여성에게 멎는다. 병사는 통역을 통해 그들을 통과시켜 주는 대가로 여자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여자와 아무 상관이 없는 어떤 남자가 창피한지도 모르냐고 묻는다. 전쟁에는 창피고 뭐고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남자가 통역에게 말한다. “틀렸다고 하시오. 전쟁은 품위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평화로울 때보다 더 그것을 필요로 한다고 전하시오.” 군인은 화를 내며 전부 쏴 죽이겠다고 한다. 그러자 남자가 “총알을 천 번 맞더라도 이런 상스러운 짓이 일어나게 놔둘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의 아들이 벌벌 떨며 러시아 병사가 진짜로 죽이려고 하니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말린다. 그는 아들의 손을 뿌리치며 통역을 향해 말한다. “저자에게 나를 한 방에 쏴서 죽이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해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저 자식을 찢어 죽이겠다고 하시오. 후레자식 같으니!”


누군들 목숨이 소중하지 않으랴. 그러나 그는 인간의 존엄을 위해 목숨을 걸려고 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욕이 아니라 품격의 소리다. 다행히 러시아 장교가 다가와서 공포를 쏘며 러시아 병사를 제지하고 사과한다. 국가는 싸우라고 보냈지만 어린 병사들이 전장에 와서는 마약에 빠져 저런 짓을 한다고 사과한다. 품격에 품격으로 응수한 것이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데 품위고 뭐고 다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일수록 오히려 더 품위가 필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주인공 아미르의 아버지, 더군다나 자신이 믿었던 품위를 실천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그에게서 큰 자극을 받았다.


내가 저 상황에 놓였어도 아미르의 아버지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내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절박한 위험을 모른 체하지 않았을까.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고민고민하다가 후자의 태도를 취했을 것 같다. 부끄러웠다.


품위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품이고 위엄이다. 부끄러워 해야 할 때 부끄러워 하는 것이고, 그 깨달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 나름의 존엄성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품위를 지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떠오른 영화 한 편, 로베르토 베니니 주연 및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 1999> 2차 대전의 참화 속에서 수용소에 수감된 주인공 귀도,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는 그곳에서 그가 아들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다. "아들아, 아무리 현실이 힘들다 해도 인생은 아름답단다."

누가 봐도 불행할 수밖에 없는, 행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끝내 유머와 생을 향한 긍정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다. 어떠한 어려움과 난관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내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한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을 영화는 잘 보여준다. 잔인한 현실은 모든 것을 앗아가고 파괴시켜 버렸지만, 적어도 귀도에겐 이러한 현실도 오히려 아름다운 인생의 한 부분으로 남은 것이다. 인간으로서 품위는 이런 것이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실패하는 사회의 특징은 품위 상실, 약자의 처지에 대한 동정과 공감 능력의 극단적 위축,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흡수할 상상력의 궁핍화다. 이런 상실, 위축, 궁핍화의 진행이 절정을 향해 치달을 때 사회는 안녕할 수가 없다."


나는 오늘 호세이니의 소설의 이 부분을 떠올리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나는 품위 있게, 제대로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이 계속 나를 사로잡았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너무 실망하지 말자고. 불편한 마음을 느끼는 것 자체가 시작이라고. 이제부터라도 품위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자고.


다시 이 소설의 한 문장을 떠올리며 이렇게 다시 나에게 다짐한다. '너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될 거니?'

“언젠가 네가 없을 때, 네 아버지와 내가 너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단다. 네 아버지는 너도 알다시피 늘 네 걱정을 했다. 네 아버지는 언젠가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자신과 당당하게 맞설 수 없는 사람은 어떤 것에도 당당하게 맞설 수 없는 법일세.’ 그래, 결국 너는 그런 사람이 된 거니?”


<할레드 호세이니 _ 연을 쫓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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