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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30. 2022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외로울 틈이 없게 바쁘게 살라고 한다. 글쎄, 그게 좋은 삶일까.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그건 옆에 누가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니다. 아무런 감정 없이 마치 로봇처럼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그건 인간적이지 않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 터미네이터(착한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분)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는 사랑을 느끼지는 못한다고, 그래서 의미를 찾고 있다고."


의미를 찾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의미를 찾는 것과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의미는 당위적이고 가치지향적이라면, 감정은 존재적이고 감성지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는 앞으로 찾아가야 할 미래적인 가치인 반면, 감정은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다분히 실존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여, 감정에 충실하다는 것은 현재에 충실하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될지 염려하거나 자신의 신상에 걱정이 많은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하기 어렵다. 사랑하면 지금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싶어 지는데,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그건 사랑이 아닐지 모른다. 사랑이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 도덕적인 가치와 충돌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게다.


한편 감정이 메마른 사람은 외로움도 잘 느끼지 못한다. 지금 외롭고 쓸쓸하다면, 아직 감정이 살아 있는 거라고 좋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나저나 외롭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나도 그렇고.  외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따라  삶이 깊어질 수도 있고, 불평불만 속에 시간만 낭비할 수도 있다. 언제나 선택은 우리 몫이다. 사랑이 우리의 의지인 것처럼.

나는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들 삶의 골목골목에

예정도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곽재구 _ 포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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