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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20. 2021

인연

견뎌야 하는 단어들에 대하여


18세기 어느 소설 속에 이런 시구가 있었다.


바람은 먼 숲으로 지나가고

꽃들은 이울어 다시 피지 않으니

이제는 그대와 나 같이 살 날이 없네.

................



바람이 불지만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꽃들 역시 한철을 핀 후 곧 지고 만다. 내년에 다시 피어도 그때 피었던 꽃이 아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헤어지고 나면, 죽고 나면 그 사람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날 수가 없다면, 같이 살 날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알 길이 없다. 시인은 헤어진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바람과 꽃으로 표현하고 말았다. 인연이 그렇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날 수 없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매일 봐야 한다. 그 고통이란…피천득 선생 역시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지금 맺고 있는 인연이 소중한 건 그 인연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원은 인간에게 주어진 단어가 아니다. 하여,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루 종일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지난 주만 해도 밤에는 선선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공기가 무겁게 느껴진다. 수분을 잔뜩 머금고 있는 것 같다. 산책길에 보니 여름에 피어야 할 꽃들이 활짝 피었다. 이미 봄꽃은 진지 오래되었다. 더 이상 그때 보았던 봄꽃을 기억하지 못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꽃들로 인해 산책길이 외롭지 않았는데.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 그 관계를 지속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인연은 운명처럼 다가오지만 그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부끄러웠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인연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지나고 보면 모든 인연이 소중했는데

항상 그것을 가볍게 여기는 내가 있었다.


<견뎌야 하는 단어들에 대하여,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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