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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08. 2022

입추(立秋)

어제는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立秋였다. 입추라고 여름이 끝났다거나 벌써 가을이 왔다는 건 아니다. 원래는 절기상 입추가 지나면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대개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서늘한 바람은커녕 하루 종일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절기가 틀린 것일까. 인간의 탐욕이 낳은 이상 기후 탓이니 절기가 맞지 않다고 탓할 건 아니다. 내가 자랐던 어린 시절과 비교해도 요즘 더위는 지나친 면이 있다.


입추가 지나면 매미 소리 대신에 귀뚜라미 소리가 밤을 장식하면서 점점 가을을 향해 간다. 어젯밤 산책을 하면서 유심히 들어보니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반면에 매미 울음소리는 더 절박하게 들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일 게다.


자기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동식물 세계를 보고 있으면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모르는 진짜 지혜로운 피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때로 지루해하거나 힘들어하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않고, 누가 알아준다 해서 우쭐거리는 법도 없다. 그 담담함과 성실함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상들은 이맘때가 되면 여름 한복판에 가을 기운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입추를 기렸다. 입추의 '立'자는 들어선다는 의미로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창 무더운 여름 한복판에 가을이 시작된다는 것, 절정의 시기에도 물러갈 때가 있음을 알았던 자연의 섭리가 놀랍다.


자연은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스스로 안다. 지혜는 바로 자신의 처지를 알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비록 실패로 끝나더라도 누구 탓하지 않고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다. 나는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화가이자 일본 타마미술대학교 명예교수인 이우환 화백은 그의 저서 <여백의 미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시절을 살아가는 내가 새겨 들어야 할 조언이다.


"인간은 필사적으로 세계를 만들어 세우려고 하고, 자연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대지로 되돌리려고 한다. 있게 하려는 힘과 없애려는 힘의 치열한 맞섬은 아름다운 겨룸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힘을 자만하는 듯한 불멸의 작품을 그리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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