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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19. 2022

정상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

얼마 전부터 주말 아침에 집 근처 산에 가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도 여느 주말처럼 아침에 집을 나섰다. 작열하는 태양, 아파트 입구부터 훅하는 덥고 습한 공기가 느껴졌다. 너무 더워서 이렇게 더운 날씨에 산에 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에 잠시 망설였다. 이왕 나선 길, 포기할 수 없었다.


올라가는 내내 좀처럼 기운을 내기 어려웠다. 땀은 비 오듯 하고, 더운 날씨 탓인지 심장 박동은 더 빨라져 평소보다 숨이 찼다. 그늘이 나오면 좀 쉬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그늘을 찾기 어려웠다. 강렬한 햇볕이 그늘마저 삼켜버린 것이다.


산에 오르는 건 힘들다. 특히 산 정상을 바라보면 까마득해서 내가 과연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부터 들기 십상이다.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이때는 무조건 한발 한 발 앞만 보고 올라가야 한다. 가급적 정상은 보지 않는 게 낫다. 정확하게는 정상을 의식하지 말라는 거다.


정상은 목표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때로 의욕을 꺾기도 한다. 산행을 하면서 힘들었던 때는 정상을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투지'에 불탈 때였다. 반드시 뭘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 그건 양날의 칼이다. 선용하면 좋지만, 지나치면 스스로를 상하게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물론 쉽지 않다. 사는 게 힘든 것도 우리 눈앞에 보이는 그 ‘정상’ 때문이다.


목표에 집착하는 순간 삶은 피곤해진다. 목표 때문에 과정은 물론 모든 것이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만을 목표로 삼으면 등산 자체가 또 하나의 일이 된다.




그러면 그 좋은 풍경은 어떻게 하느냐고? 쉴 때 봐도 충분하고, 산 정상에 가서 봐도 부족하지 않다. 정상을 염두에 두고 올라가다가 지쳐서 올라가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그게 낫다는 거다.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너무 의식하는 것도 피곤하다. 우리 인생도 다를 바 없다.


주어진 지금 이 순간순간을 성실하게 살아야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만 바라보면 현재는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언제 올지도 모를 미래에 희생당하고 마는 것이다. 매사가 즐겁지 않고 재미가 없어진다. 미래만 쳐다본다고 그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법륜 스님도 이렇게 말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실패했을 때나 성공했을 때나 똑같은 내 인생입니다. 인생은 과정이 중요합니다. 꼭대기에 올라가는 게 목표라도 거기에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어요. 꼭대기에 못 올라갔다고 해서 등산을 안 한 것은 아니지요."


어찌어찌해서 정상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잠시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 더위에도 산에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산에 가면 느끼는 거지만,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정상에 가면 많다는 사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내가 망설이고 주저하는 순간에도 그 순간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과 경쟁하라는 말은 아니다. 피곤하다고, 덥다고, 지친다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기운을 내서 뭔가를 하는 것이 덜 피곤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엇도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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