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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악

슬픔에서 시작된 이야기

미셸 자우너 / H마트에서 울다

by 서영수

왜 삶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영원할 수 없을까? 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 겪다 보면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사랑하는 이의 부재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 역시 때가 되면 내 곁을 떠나게 마련이고, 어쩌면 내가 먼저 그 사람의 곁을 떠날 수도 있다. 즐겁게 살라고 하지만, 즐겁지만은 않은 게 우리 현실이니, 그런 말로 억지로 내 슬픈 감정을 숨길 필요는 없다.


오래전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무겁게 살지 말고 존재를 가볍게 하자'고 생각한 적이 있다. 무겁고 어두운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내 존재를 가볍게 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라도 가볍게 하지 않고선 무거운 세상을 살아가기 어려운 것을. 오늘 소개하는 뮤지션 역시 그런 상실과 아픔의 과정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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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뮤지션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 33세) 그녀는 뮤지션이면서도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가 최근에 낸 자전적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 원제: Crying in a H Mart: A Memoir>


이 책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미국 MGM영화사에서 영화로 제작 중이다.


한국교포나 유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들렸을 H마트, 그녀의 어머니도 한국 사람이었고 그녀 또한 엄마를 따라 자주 갔을 테니 그곳은 그녀에게 추억이 서린 곳이었으리라. 그녀는 2014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썼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의 아픔은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세상 모든 엄마가 그렇듯, 그녀에게 H마트로 상징되는 엄마라는 존재는 오랜 추억의 대상이자 힘든 삶을 살아가는데 큰 의지가 되었다. 아, 맞다. 오늘은 그녀의 책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지..


미셸 자우너는 음악적으로는 다소 몽환적인 슈게이징Shoegazing 음악을 하는 미국 인디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리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이다.


한국계임에도 밴드명을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로 지은 것은 우연히 본 일본식 조식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즉흥적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별 의미가 없다고. 그러니 밴드명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말한다.


중요한 건 그녀의 음악이다. 다만 그녀의 곡들은 듣기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이 곡은 가장 최근에 발매된 그녀의 신곡인데,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기존의 그녀의 다른 곡보다는 어느 정도 대중성을 확보한 것 같아 소개한다. 애플 뮤직은 이 밴드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미셸 자우너를 중심으로 하는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음악은 철저하게 감정에서 출발한다. 어머니를 여읜 후 맞닥트린 상실감과 절망감,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치유와 성찰의 과정을 자신의 음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몽롱하고 추상적인 사운드가 곡에 부드럽고 낭만적인 느낌을 더해주지만, 노이즈를 다각도로 활용한 섬세한 편곡과 날이 잔뜩 선 목소리는 내면에서 꿈틀대는 감정이 얼마나 격렬하고 절절한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금요일, 한 주를 보내고 지쳐 있는 시간, 이 곡과 함께 좀 더 가벼워졌으면!!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마찬가지고.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 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 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버린 것이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어찌어찌 잘 풀릴 거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난파선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담히 지켜보고 있는 태풍의 눈과도 같았다.


<미셸 자우너 _ H마트에서 울다, 2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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