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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20. 2022

삶이 고통스럽다면

어제 이른 아침, 출근을 하는 길에 병원에 다녀왔다. 정기 검진일이기도 하지만, 최근 한동안 보이지 않던 증상이 더해져서 신경이 쓰이던 차에 가는 병원이었다. 병원은 오전인데도 환자들로 붐볐고, 코로나19,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늘어서 등록 단계부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병원에 가면 마음이 겸허해진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기도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어떻게 마음을 추스를 건지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막상 그 순간이 오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3개월 만에 가서 그런지 마음이 더 그랬다.


징후가 보이면 대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 '뭐 할 수 없지. 이래서 그런 증상이 있었구나' 하고 말았다. 주치의는 이런 걸 해보자고 하고, 나는 그걸 또 하나요? 반문하고. 그런 내 반응에 선생은 잘 알면서 뭘 또. 이렇게 이심전심이 되나 보다. 알겠다고, 그렇게 하자고 할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나도 잘 아니까.


불치병에 걸려서 치료가 안 되는 환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치료라고 해봤자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그것도 치료긴 치료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병을 내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 잘 모르겠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사실 답이 없다는 점에서는 그들과 다를 바 없다.


그래도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니 그 약한 부분을 잘 보듬고 살아가야 한다고 어느 순간부터 다짐하고 있던 차였다. 물론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병원을 나서면 다시 불안한 마음이 들고, 예전 같으면 의사에게 꼬치꼬치 물어봤을 텐데,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냥 치료를 받고 대충 인사하고 병원을 나섰다.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길이 오늘따라 무척 길게 느껴진다. 시간은 9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비교적 진료가 빨리 끝난 편이다. 출근 시간이 막 지나서 그런지 늦은 출근을 서두르는 직장인들이 몇몇 보이기는 하지만, 평소 사람들로 붐비는 테헤란로가 한적하다. 내 마음에 따라 풍경이 달리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사는 건 별다른 게 없다. 나한테 좋지 않은 거라도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어려움이 일상화되면 포기하거나 체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들도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으리라.


더 이상 상황과 다투지 말고 상황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나한테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상황과 다툰다고 하지만, 결국 나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상황을 허락한 신을 원망하는 것이다. 그건 부질없는 짓임을 나는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


병에 걸린 건 누구 잘못도 아니고, 그렇게 삶이 망가지도록 신이 허락한 바도 없다. 잘못된 생활습관이 문제였을 수 있고,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해도 최소한 신에게는 잘못이 없다. 오히려 신은 그걸 이용해서 나를 완성해 가니 감사해야 한다.


어쩌면 병이 없는 게 더 병일지 모른다. 아프지 않으니 삶을 제어하지 않은 채 폭주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차라리 병에 걸렸다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일부러 병에 걸릴 필요는 없지만, 아프다고 너무 좌절할 것도 아니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20세기 영국 문학의 대표 작가인 C.S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무서운 병은 고통 없는 병이다. 그러므로 내 삶이 고통스럽다면 그건 행복의 신호다. 내 삶을 돌아보고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비바람이 불기도 하고 태풍이 오기도 한다. 그때마다 왜 이렇게 날씨가 나빠, 왜 내가 있는 곳만 이래, 하면서 불평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고 담담히 살아가야 한다.


늘 자연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무는 비바람이 불어 뿌리째 뽑히는 한이 있어도, 심어진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잎과 꽃을 피운다. 마치 그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물며 나무도 그러는데 인간인 나는 말할 필요가 없다. 아프지 않아 병원을 안 가는 게 가장 좋지만, 질병을 통해 깨닫는 바도 있으니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거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면 살면서 기분 나쁠 일이 별로 없을지도.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윤동주 _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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