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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25. 2022

가을 햇살

주말 아침. 평소보다 늦은 기상,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며칠 사이에 부쩍 선선했는데, 지난밤 이불을 바꿀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창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햇볕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따뜻한 느낌, 지난여름 햇볕을 피해 다녔는데 이제는 해가 그리워지다니,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태양도 계절에 따라 뜨겁다가 따뜻해지듯(물론 우리의 느낌이다. 태양은 그 자체로 변함이 없다), 사람의 마음도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건가 보다 했다. 셀 수는 없지만 내 안에 '또 다른 나'가 얼마나 많을지, 그런 '나' 때문에 힘들어지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 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였다. 자연이 변화무쌍하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눈을 감고 햇살을 쬐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따뜻한 느낌, 감촉…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몇 분 있었으려나, 벌써 해는 나를 피해 다른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기분 좋은 순간은 짧았다. 햇볕을 따라서 움직이면 되지만 그마저도 곧 사라지고 말 터, 모든 것은 이렇게 한순간이었다. 그러니 이런 순간이 내 곁에 잠시 머물 때 충분히 누려야 한다. 


내일도 날씨가 맑으면 이 햇살을 다시 쬘 수 있겠지만, 오늘의 햇볕이 내일의 햇볕일 수 없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매일매일 변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얼마나 무정하고 무심한가. 좋았던 순간들이 오래오래 내 곁에 있었으면, 대신 나쁜 순간들은 순식간에 내 곁을 떠나 과거로 사라졌으면 좋겠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 바람과 달리 자연은 자기에게 주어진 속도로 자신을 바꾸어 갈 뿐이다. 


자연만 변하는 게 아니다. 우리 역시 시시각각 변하는 존재다.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변화의 흐름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아침 햇살에 이런 생각까지 들다니,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세월의 무상함에 씁쓸해졌다. 변하지 말 건 변하고 변해야 할 건 변하지 않는다. 내가 그랬다. 자연처럼 차라리 매 순간 알맞은 자기만의 속도로 변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긍정적인, 좋은 방향으로. 그래서 아름답고 품위 있게 나이가 들어갈 수 있었으면. 


주말이라 여전히 사방은 조용하다. 한눈을 파는 사이, 가을이 훌쩍 오고 말았다. 가을은 뭘 하기에도 좋은 계절, 아무래도 오늘은 이 가을을 더 느낄 일을 찾아봐야겠다. 안 그러면 자연은 홀로 풍성해지는데, 내 기억은 자꾸 헐렁해지고 말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모든 옷들이 헐렁하다 

나와 나 사이

서늘한 기억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

옷을 더 두껍게 입어야 하나

기억은 자꾸 헐렁하고

벌판은 홀로 풍성하다


<문정희 _ 가을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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