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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15. 2022

크게 변한 것은 없으니

추석 단상

지난 추석,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었다. 부쩍 말수가 줄어드신 아버지, 지난 추석에는 내 근황을 묻거나 잔소리도 좀 하셨는데, 이번 추석은 확연히 달라지셨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특히 검찰이나 정치 이야기 정도만 하시고(그것도 내가 먼저 화제를 꺼내야 마지 못해 하셨다) 애써 충고나 조언을 자제하시는 것이 느껴져 오히려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신 걸까?


아버지는 미래의 내 모습이라고 하던데, 나도 저 나이가 되면 말수가 적어질까?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나눌 대화라는 것이 마땅치 않을 것 같았다. 나도 아버지하고 할 말이 많지 않았다. 부모도 가끔 보면 할 이야기가 많지 않은 법, 의례적인 안부를 묻는 정도에 그치고 만다. 


본과에 올라간 후 공부한다고 정신이 없는 큰애, 그에게는 이번 추석은 명절 같지 않은 명절이다. 나도 사법시험 준비할 때 그랬던 것 같아서 이해는 가지만 함께 하지 못하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아마 아버지도 그때 이런 마음이셨을까. 부모 마음은 내가 부모가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거였다. 그것도 아주 조금. 


순간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 마음이 착잡해졌다.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도 자주 못하고, 명절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찾아오는 아들, 그동안 많이 섭섭하셨을 것 같다. 함께 살 때나 자식이지 독립해서 떠나면 가까운 곳에 사는 이웃보다 못한 존재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같다. 아마 나도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 마음을 잊고 종전과 같은 생활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지난해와 또 다르게 기력이 쇠해지신 부모님, 부쩍 늘어난 흰머리, 굽은 허리, 많이 늙으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안쓰럽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삶의 무상함, 부모님도 비슷한 심정이실까. 저 나이가 되면 나도 저렇게 될 텐데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면 마음이 복잡해지고 만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 나이가 든 거라고 하는데 깊어가는 밤,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쉽게 눈을 붙일 수 없었다. 


밤늦게 큰애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음 주 시험을 봐야 해서 밤새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무리하지 말고 건강도 잘 챙기면서 하라고 말해보지만, 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힘내라고, 잘할 거라는 말을 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번 추석은 이래저래 마음이 참 그랬다. 


아버지를 보면서, 아들과 통화를 하면서 사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옆에 있던 둘째가 자기도 내년에는 형처럼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지만, 밤새고 그러지는 않을 거라고 잘 거 다 자가면서 공부할 거라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큰 소리를 쳐서 웃고 말았다. 


김혜진 그림책 독립연구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도 역시 부모도 세상도 답해 주지 않는 많은 질문이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아이들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들과는 다르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젊은 시절은 가식이었는지 모른다. 답을 찾으려는 사이 젊은이들은 어느새 부모가 돼버렸다. 모든 것이 변할 테고 달라질 거라 생각했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나도 부모가 되면서 아버지와는 다르게 살 거라고 다짐했지만,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큰소리쳤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부모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무심히 살았던 지난 시간이 떠올라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변화는 피상적이다.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와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면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존 버닝햄 _ 나의 그림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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