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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24. 2021

세 월

나이 듦에 대하여

“추억은 언제나 기쁨과 슬픔을 함께 가지고 있다. 좋은 기억도 추억이 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슬픔을 머금기 마련이고, 안 좋은 기억도 추억이 되면 세월의 길이만큼 아름다움을 덧입기 마련인 것이다.”


<장기하, 안녕 다정한 사람>




오늘은 장기하의 글처럼 추억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소 씁쓸한 현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인생은 씁쓸한 초콜릿 같다. 먹어봐야 씁쓸함을 알 수 있듯, 살아봐야 삶이 주는 비애를 깨달을 수 있다.


최근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미국 영화배우의 사진을 봤다. 자서전을 낸다고 하면서 언론과 인터뷰를 한 기사에 최근 모습이 나온 것이다. 한때 아름답다고 주변 모든 사람들의 칭송을 받던 배우였다. 그녀도 세월의 흔적을 피해 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성형수술을 많이 해서 그런지 전체적인 모습이 무척 부자연스러웠다.


늙는다는 것은 외양적으로만 본다면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을 잃는 것이다. 외모로 인정받고 살았던 사람이었으니 그 사실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을까. 성형수술로 버텨보려고 했던 그의 노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세월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 흔적이 묻어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의식하면 힘들고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면 편하다. 늚음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쉽지 않다. 늙고 싶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내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현실 앞에 힘들어한다.


지난 시절, 특히 부모 세대에 유명했던 배우들의 젊은 날의 사진을 보면 그 미모가 지금 배우들과 비교해봐도 결코 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도 역시 한때는 잘 나가는 배우들이었다.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생각한다. 나이 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성기를 지나 은퇴를 하면 자신을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쇠락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소멸되어야 한다고. 기억되어야 할 때가 있듯, 잊혀져야 할 때도 있다. 그 시기를 아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다.




공직을 떠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공직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그때를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배우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부끄러웠다.


자신의 처지와 자리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나 없이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 문제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함이지 세상이 아니다. 자꾸 그러면 나만 불편해진다. 주변 사람들도 불편해지고.  


내가 먼저 편해야 주변 사람들도 편하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내려놓아야 한다. 여전히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생각을. 예전에도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었다. 착각일 뿐이다.




그리움만 안고 지내기로 했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그대가 많이 변했다니

세월 따라 변하는 건 탓할 건 못되지만


예전의 그대가 아닌 그 낭패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멀리서만 멀리서만 그대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이정하, 멀리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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