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클라우드 / 얼음요새
디어클라우드의 <얼음요새>를 들은 건 오랜 부산 근무를 마치고 대검찰청으로 발령을 받아 다시 서울 생활을 할 때였다. 2017년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7년 11월에 발매되었으니 내가 이 곡을 들은 것도 10년이 훨씬 지난 뒤였다. 그때는 미국 연수 중이었으니 아마 이 곡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한 곡으로 우리나라 음악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Rock을 좋아했고 특히 Britpop 계열의 Alternative Rock을 주로 들었던 터라, 우리나라에 모던 록 계열의 음악을 하는 여성 밴드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요는 신파조에 소프트한 발라드 풍이 대세라서, K-pop은 실력보다는 율동으로 승부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서 자주 듣지 않았다. 편견이었다. 음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교만했고 한마디로 무지의 소치였다.
이 곡을 다시 들으니 힘들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보다 훨씬 힘든 시기였다. 삶 자체가 곡 제목처럼 차가운 얼음요새에 갇혀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의 나로 그때의 나를 잴 수 없다.
그건 마치 내가 이미 겪은 어려움을 다른 사람이 뒤늦게 겪는 것을 보면서 ‘그거 별거 아니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깨달았다. 어려운 사정과 형편은 각자 다르지만 느껴야 할 고통의 강도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을.
내가 이 곡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중간쯤 리드보컬 나인이 부르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워 안되는 줄 알면서도, 작은 기적이라도 내게 찾아와 줄 수는 없는지. 온갖 차가운 말로 내 마음을 얼어붙게 해. 부디 나약한 내 손을 잡아줘.'이다. 이 곡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폭발적인 가창력, 독특한 그리고 호소력 짙은 음색은 지금 들어도 신선하다. 그 시절 내 상황과 오버랩되어서 그런지 가사 또한 마음에 깊이 남았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되게 하고 싶은 것이 우리 마음이 아니던가. 눈부시게 아름다워 내 눈을 멀게 했다면 더더욱. 그러나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그럼에도 이 곡이 여운을 남기는 것은 실패는 예정되었지만 끝까지 시도해 절망을 극복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다면 바로 그 부분이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절망스러운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뮤직비디오는 지금과 비교하면 화질도 떨어지고 뭔가 어색한 부분이 눈에 띄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곡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오늘도 이 곡을 듣고 그 시절을 생각했다. 그때도 버텼으니 지금도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젠 상관없다고.
그때와 조금 달라진 건, 세월이 흘러 무뎌진 건지 상황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좀 더 빨라졌다는 점이다. 여전히 내가 마땅치 않고 때로 한심하게 생각될 때도 있지만 이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는다. 매일 무너지고 다시 일으켜 세우고, 답답해하고 그러고 있으니까.
원래 기대할 것이 별로 없으면 미련도 그렇게 생기지 않는 법이다. 요즘 내가 그렇다. 체념인지, 포기해 버린 건지 아니면 허무주의에 빠진 건지 잘 모르겠다. 삶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면 자칫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게 그거 같고, 별 감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과 운명을, 그것도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긍정적이라는 것은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과는 다르다. 봄에 핀 파릇파릇한 새싹과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며 그들의 생명력을 예찬하는 것이고, 젊은 사람들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이 봄날이 나한테 한 번 더 주어진 걸 좋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비록 순간이지만 어느덧 내 문제는 저만큼 작게 줄어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문제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뀐 것이다. 그게 바로 Amor Fati,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이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도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장담하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위선적인 말일 수 있지만,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전이다."
<오스카 와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