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어제와 비슷했다. 오래 걸었다. 부산에 살 때 가끔은 모임이 끝난 늦은 밤 또는 주말에,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센텀시티에서부터 관사가 있는 좌동까지 걸어서 가곤 했다. 바다에는 사진에서나 보았던 요트들이 있었고, 뒤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던 곳, 해운대에서 가장 핫한 곳이 센텀시티나 마린시티였다.
오래전에 부산에 와본 사람들은 해운대만 보면 부산으로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해운대는 많이 변했다. 서울에 있는 건 웬만하면 그곳에도 다 있었다. 오히려 화려함은 어떤 면에서는 서울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으니, 너무 도시화되어서 부산 특유의 느낌이 사라진 아쉬움이 있다는 푸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해운대에 살면서 평생 볼 고층 빌딩은 다 본 것 같다. 센텀시티나 마린시티는 기본적으로 50층 이상 되는 건물들이 많았다. 관사가 있는 아파트만 해도 30층이었으니, 부산 사람들은 높은 건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인가 보다 했다. 특히 센텀시티나 마린시티의 야경은 외국의 유명 도시들과 비교해서 손색이 없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길은 상쾌했다. '영화의거리'부터 시작해서 '해운대 달맞이길'을 거쳐 가는 길은 걷기 좋았다. 아무래도 관광지다 보니 호텔과 콘도 주변으로 사람들이 붐볐다. 사람 구경도 하고 바다도 구경하면서 걷다 보면 어느덧 관사가 있는 한적한 좌동에 이르렀다. 그때 들었던 곡이 오늘 소개하는 윤건의 <가을에 만나>였다.
원래 나는 윤건을 잘 몰랐다. 우연히 카페 등 어디선가 그의 음악을 들었을지는 몰라도 내가 찾아서 듣는 가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친구를 통해 알게 된 그의 곡 <오늘은 Rainy Day>를 듣고 이 곡까지 알게 되었으니 어쩌면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나는 윤건을 영영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브라운 아이즈(Brown Eyes)'를 나얼과 함께 결성해 활동했다는 것도 그 무렵 알게 되었다. 그 곡을 처음 듣고 받았던 신선함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무엇보다 처음 시작될 때 나오는 반주가 인상적이다.
내가 윤건의 이 두 곡을 검찰청 아침방송에도 소개할 정도로 좋아했으니 많이 들었던 건 분명하다. 당시 근무지였던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은 출근길에 가벼운 음악을 2-3곡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차장검사인 나에게도 좋아하는 곡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때 소개했던 곡이 윤건의 <가을에 만나>였다.
검사들이나 직원들 중에는 부산 출신이 많아서 그런지, 그 곡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 호응이 좋았다. 그 후로도 내 차례가 아닌데도 음악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여러 번 받았다. 윤건 덕분에 나는 음악을 꽤 아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작년 이맘때 교통사고로 차 뒷부분이 많이 부서져 정비소에 맡겼다가 다시 찾은 적이 있었다. 며칠 안 타다가 다시 타니 내 차 같지 않았다. 그새 며칠 대신 탔던 렌터카에 익숙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적응하기 나름이라고 금세 다른 차에 적응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었다.
같이 살던 사람도, 연락을 꾸준히 하던 사람도 같이 살지 않거나 연락이 끊어지면 낯설어지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근처에 사는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옆에 없으면, 목소리라도 듣지 못하면 못 살 것 같아도 시간문제일 뿐 그가 없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 그렇게 되고 나면 같이 살았던, 연락하고 지냈던 때가 언제인가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다. 슬프게도.
나는 그 사실을 진작 깨달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의 인연이 끊어질 것 같으면 그게 염려스러워 많이 주저하곤 했다. 정에 약해서, 어쩌면 어려서부터 자주 집을 떠나 이런저런 헤어짐을 자주 겪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헤어지면 다시는 연락하기 어려울 거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살다 보면 연이 다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오늘 소개하는 곡을 알게 해 준 그 친구 역시 몇 년 만에 다시 연락이 되었는데, 지금은 원래 태어나서 자랐던 캐나다로 돌아갔다. 나이도 있으니 이제 다시 한국에는 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SNS로 연결되어 있어 언제든지 서로의 근황과 소식을 접할 수 있다고 하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렇다고 국내에 있을 때 자주 본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면서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으니 지금과 달라질 것도 딱히 없다.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 부디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문득 혼자라고 느껴질 때, 떠오르는 지난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은 잠시나마 지친 삶을 잊게 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준다. 되새길 추억이 많은 사람은 삶이 풍요로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지나간 일들이나 사람들을 그만 기억하고 싶다. 그건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이미 지나간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상처나 그리움은 흘려보내는 거다. 머물러 있으면 아프니 머물지 말고 페이지를 넘기듯 시간에 맡겨버려야 한다. 안 그러면 나만 힘들 뿐, 상처를 준 사람이나 그리운 그 사람은 내가 아픈지도, 힘든지도 모를 테니까. 이렇게 인생은 지나가버린 것들의 연속이라는 것, 지나고 나면 가슴엔 켜켜이 그리움만 쌓이고 만다는 것, 이젠 그만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닫고 또 깨닫고 있다. 내가 한때 걸었던 해운대 거리에 남은 나를 아쉬운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