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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25. 2022

긴팔을 걷는다고 반팔이 되는 건 아니지만

오래전에 알던 지인을 만나면, 예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변하지만, 나는 가끔 이 변화의 흐름을 놓치고 산다. 자주 보면 변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지만, 시간의 간격이 길면 그렇지 않다.


함께 한 시간들이 소중하다는 건, 관계의 지속성을 전제로 한다. 나도 변하고 함께 했던 그 사람도 변하면 일부러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변화를 눈치채기 어렵다.


상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실은 내가 변한 거다. 예전의 그의 모습에 집착한 채,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내가 문제인 거다. 무엇보다 처음 가졌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세파에 찌들려 변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한계에 직면할 때, 그런 나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 늘 고민했다.


살다 보면 젊은 시절 품었던 감성과 이상, 꿈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세상적인 관심과 욕망이 차지하게 된다. 불가피하기도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애들 진학 문제, 집, 주식, 노후 걱정 등등.


그런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갖더라도 그 외의 문제에도 내 관심을 적정히 분산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거다. 나라는 사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평소에 내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니까.


걱정은 끝이 없는데 한가하게 낭만을 찾는다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러면 묻고 싶다. 그게 당신의 진짜 모습이냐고. 우린 모두 변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간직해야 했던, 간직해야만 했던 바람직한 모습은 어떻게든 되찾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의 주인공이 한적한 아마존 오두막에서 연애소설을 읽었던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살 만큼 살아 별 감흥도 느끼기 어려운 나이가 됐는데도 한가롭게 연애소설을 읽다니 그게 말이 돼, 아마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노인은 그렇게라도 세월과 속화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에 저항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슬픈 것은, 외모가 낡아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낡아지는 것이다. 설렘, 아름다움에 대한 탄식의 상실이 슬픈 것이다. 긴팔을 걷는다고 반팔이 되지는 않지만 반팔에 가까워질 수는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긴팔을 걷는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예전에 <갔다 온 사람>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시 속에는 오랜만에 재회한 과거의 연인이 등장한다. 여름은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일 수도 있고, 으레 호시절이라 부르는 어떤 시기일지도 모른다.


시에 등장하는 '긴 팔을 아무리 걷어도 반팔이 되지는 않아'라는 구절처럼, 한 번 헤어졌던 사람들이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설령 다시 사랑한다 하더라도 조금은 변화한 두 사람이 만나는 셈이다. '반팔을 입고 갔다가 긴 팔을 입고 온 사람처럼' 묵묵히 시차를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오은 _ 여름이 다 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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