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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05. 2022

구태여 내 마음을 괴롭히지 말아야

"토요일 오후께 내일은 일요일이란 생각에 도쿄 거리를 마음 편히 두리번두리번 어슬렁어슬렁 걷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한센병을 연구한 의사이기도 했던 일본 시인 기노시타 모쿠타로(1885 - 1945)의 말이다. 


무언가 '기대'할 게 있다는 건 희망적이다. 소풍 가기 전날이 소풍 가는 날보다 더 설레듯,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 주말보다 더 마음이 가벼운 것도 그 기대감 때문이다. 막상 기대했던 그날이 되면 별게 없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런 기대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비록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기대에 불과하더라도, 그것마저 없다면 사는 게 더 힘들어질 것 같다. 


주말에는 푹 잘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언젠가는 보고 싶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내일은 오늘과는 다를 거라는 기대, 무더운 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이 올 거라는 기대, 잔뜩 먹구름이 낀 것 같은 삶이지만 언젠가는 웃을 날이 올 거라는 기대.... 그런 기대들이 쌓여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기대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살아보니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반의반만이라도 이루어지면 다행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만 해야 할까. '이제부터 쓸데없는 기대 같은 건 안 해, 어디 내가 그런 기대하나 봐라.' 하고 괜히 심통을 부려야 할까. 


삶과 다투면 나만 손해다.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는 삶은 그런 푸념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내가 그랬다. 남들 앞에서는 "괜찮아요" 내심 덤덤한 척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잠깐 그러고 말았어야 했는데, 내려놓았어야 했는데,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나만 더 힘들어지고 말았던 적이 있었다. 


인생은 기대를 점점 줄여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기대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기대를 아예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기대는 하되 그 기대가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는 그다음 문제라고. 기대는 기대고 현실은 현실이라고. 기대한 대로 되면 좋고 안돼도 할 수 없다고. 주어진 현실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거다. 


시인이 살았던 시절에는 요즘처럼 금요일이 아닌 토요일도 일을 했을 테니, 토요일에야 비로소 내일이 일요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을 것이다. 우리로 치면 금요일 저녁에 저런 생각이 들 것 같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주중에 힘든 일이 있어도 '그래 곧 주말이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주초라서 언제 주말이 오나 하는 생각이 들면 퇴근 후 집 근처를 잠시 걸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에게만 향해 있던 관심을 분산시키는 것만큼 나를 이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나는 찾지 못했다. 그중에 하나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거고. 

내려놓으면 된다

구태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말거라

부는 바람이 예뻐

그 눈부심에 웃던 네가 아니었니


받아들이면 된다

지는 해를 깨우려 노력하지 말거라

너는 달빛에 더 아름답다


<서혜진 _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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