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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15. 2022

수능을 앞둔 딸에게

먼저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고등학교 3년간 코로나19 확산으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마스크를 쓰면서 보냈으니 마스크를 쓴 것만이 추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채 며칠 남지 않았구나.


지금도 스터디카페에서 막바지 정리로 분주한 너를 보니 아빠로서 마음이 무겁지만, 한편으론 네가 대견하기도 하단다. 늘 성실한 자세로 꾸준히 공부하는 네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거든.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공부하러 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은 좀 쉬면 어떻겠느냐고 말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방은 왜 그렇게 무겁던지. 공부할 양이 많아서겠지. 어쩌면 불안한 네 마음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르고.


해도 해도 끝도 없는 공부, 왠지 남은 다 아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불안감. 시험을 앞두고 당연히 드는 생각이다. 아빠도 학력고사를 볼 때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지금도 대학입시나 사법시험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니 그때의 경험이 상당히 힘들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고민하기 마련이야. 공부는 하면 할수록 내가 부족한 부분이 더 보이고, 해야 할 양이 늘어나니까. 만약 지금 불안하다면 그동안 제대로 공부했던 거라고 생각하렴.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어려움이나 역경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럴 바에는 정면 승부를 하는 게 낫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비결은 종전처럼 그대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내가 공부하기 싫고 공부가 어려우면 남들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니? 그러니 마음 편하게 먹으렴.


앞으로도 살다 보면 힘든 일이 많이 있을 거야. 어쩌면 인생은 즐거운 순간보다는 지루하고 평범한, 때에 따라 어려운 일들만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과정인 것 같더구나.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너는 하나님을 믿으니 기도할 수 있겠지. 그건 참 중요하단다. 내 힘으로 안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겸손해지지. 그 겸손한 자세가 바로 돌다리도 두들겨가는 신중함을 낳는 거란다.


한편 지금 네가 하는 공부가 힘들고 지루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여러 일들을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아마 대학에 가서 어려운 공부를 하게 하게 될 때나 직업인으로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지금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지. 맞아, 그때도 혼자 힘들게 공부했는데 이까짓 거 못할 게 뭐야! 그런 면에서 지금 하는 공부는 앞으로 살아갈 삶의 자세와 태도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렴. 지금을 잘 버티고 이겨내면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잘 버틸 수 있단다.


아빠도 사법시험 준비를 할 때 많이 힘들었다. 스스로를 고립시켜야 하고, 공부할 양도 많아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공부에 집중을 해야만 했지. 그때의 경험이 그 후 검사 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 그러니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그런 경험을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거기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남들이 다 하는 과정인데 뭘 그러냐고 생각하진 않는다. 모두 각자의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가지만 그 짐은 절대적이어서 다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거란다. 네가 하는 공부나 이 모든 과정도 마찬가지였을 거고.


공부는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밀도 있게 채워가느냐에 달려 있고, 그 시간 속에서 이미 성패가 결정된단다. 결과는 그다음 문제야.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라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일 게다. 후회 없이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족한 거지 결과는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렴. 생각해 보면 늘 과정이 문제였지 결과는 순간이었어. 그렇다고 결과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라는 말은 아니다. 과정 속에서 나를 잘 지켜내지 못하면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나한테 뭔가가 남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건 공허한 일이지.


아무튼 힘든 과정을 이겨낸 네가 자랑스럽다. 여전히 안쓰러운 마음 뿐이지만 이제 끝이 보이니 조금만 더 힘을 내렴. 그리고 수능시험이 끝나면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뤄두었던 것을 마음껏 해보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시 한 편을 선물하마. 사랑한다. Good luck!!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마종하 _ 딸을 위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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