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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29. 2021

어둠 속에서 찾는 한 줄기 빛

조진주 인터뷰/삶의 단상

지난 주말 오후에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길을 걷던 중에 갑자기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듣지 못해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는데, 당황스러웠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폭우처럼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비를 피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 건물 처마 밑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그냥 비를 맞고 갈까 생각도 했지만, 집까지 가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근처에 우산을 파는 편의점도 없었고, 버스 정류장이나 택시를 탈 만한 곳도 아니다. 그렇게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 보니 1시간가량이 흘렀다.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비가 그치길 바라며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는.




살다 보면 우연찮게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는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모두는 코로나19 때문에 어렵고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삶이 주는 어려움은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무언가를 남기기 마련이다. 그때 본질이 드러난다. 무엇이 중요한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앞으로 어떻데 살아가야 하는지...




절망스러운 상황은 있을지 몰라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한계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고백처럼.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나의 진실된 사랑은 음악이지 연주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세상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나의 음악이 멈춘 적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숙성할 수 있는 시간이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를 피하면서 그녀의 고백이 떠올랐다. 평소 연주를 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니던 그녀로서는 집안에 갇혀 있는 시간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인당하는 험난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그 시간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으리라. 오히려 먼 훗날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고, 의미 있었던, 성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남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 알아야겠지만.




“지난 1년은 코로나 때문에 제 삶의 존재 이유인 노래를 할 수 없었던 나날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에 KO 당한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떠올랐어요. 어머니의 말씀이····. ‘견뎌라, 견디는 게 이기는 거야. 우리 인생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거란다.’


<조수미,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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