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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22. 2022

그 다정을 어찌 지나칠까요

신인류 / 작가미정


"당신 손목에 있는 흉터를 봅니다.

지나가는 세월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나의 모든 잘못과 결점 중에 당신은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우리 함께 이 긴 밤이 지나도록 그것을 즐길 수 있게,

천천히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해 주세요."


<존 버거 _ A가 X에게>




차분하게 흐르지만 가사에 힘이 있는 곡이 있다. 리드보컬의 압도적인 분위기로 별다른 반주가 필요 없는 곡, 차분히 계절의 끝자락을 돌아보게 하는 곡, 길을 걸으면서 들으면 온갖 사연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주는 곡, 인디 팝 밴드 '신인류'의 <작가미정>이다.


힘들고 지친 일상, 잠시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스쳐가는 사람들도 슬쩍 둘러보고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살짝 미소를 짓고 발걸음에 힘을 다시 보태주는 그런 느낌의 곡이다.


처음에 흘러나오는 기타 연주는 잔잔하면서도 인상적이다. 반주는 보컬을 넘어서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딱 맞는 곡을 만난 셈이다. 리더이자 보컬을 맡고 있는 '신온유'의 음색은 이 가을과 잘 어울린다.


11월도 이제 거의 끝나갈 무렵, 가는 계절이 아쉽기도 하고 2022년도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아서 그랬는지 일찍 깼다. 황급히 썼던 결말 끝에서 빼먹은 구절이 또 생각이 나서, 그 다정스러웠던 순간을 차마 지나칠 수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기울어진 새벽의 모습 속에 서둘러 쓴 단어가 몇 개일지, 그곳에 존재했던 사랑의 말로 당신의 등장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천천히 오가는 대화 속에

남는 단어는 몇 개일까요

구석진 자릴 앉아 커피를 마셔

그대의 일부 식지 않도록


더 이상 내 얘기가 아니었던

황급히 쓰는 결말 끝에서

빼먹은 구절이 또 생각이 나면

그 다정을 어찌 지나칠까요


담담했던 저 하늘 끝으로 내게

왠지 비가 내릴 것 같죠

그대 노곤히 풀린 몸에 맡겨

이내 슬프진 않겠구나


기울인 새벽의 모습 속에

서두른 단어 몇 개일까요

그곳에 존재했던 사랑의 말로

그대의 등장 해치지 않도록


더 이상 내 얘기가 아니었던

모두가 있는 대화 속에서

명백한 결말이 또 내려진다면

그 이유가 어찌 중요할까요


담담했던 저 하늘 끝으로 내게

왠지 비가 내릴 것 같죠

그대 노곤히 풀린 몸에 맡겨

이내 슬프진 않겠구나



<신인류 _ 작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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