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프루스트
벌써 6년 전이다. 2016. 11. 27. 나는 부산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추워서 그런지 아니면 해운대라서 그런지 하늘은 무척 청명하고 맑았다. 여행을 가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부산에 그것도 해운대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시절이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추억이라고 해봤자 혼자 살면서 느꼈던 소소한 일상의 경험이 다 인데도.
그때 썼던 한 줄. ‘이제 겨울, 그 계절로 가는 어느 저녁 무렵. 삶이 지속되어야 한다면 지금 이 풍경 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무슨 의미로 이런 글을 남겼을까. 아마 오늘과 비슷한 마음이었을지도.
그리고 데이비드 로렌스의 글도 그때 읽었던 것 같다. “나는 들짐승이 자기 연민에 빠진 것을 본 적이 없다. 얼어 죽은 작은 새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질 때 그 새는 자기의 존재에 대하여 슬퍼해 본 적도 없었으리라.”
동물과 달리 우리 인간은 회고적이다. 지금 이 순간만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거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대개 유쾌했던 기억만 떠오르는 건 아니지만 중간중간에 숨어 있는 보석같이 좋았던 순간도 있었다. 어떻게 지금으로 그 기억을 끄집어내느냐만 남았지만, 그런 추억마저 없다면 사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인 '나'는 마들렌 과자를 홍차에 녹여 먹다가 어린 시절에 먹었던 똑같은 맛을 불현듯 떠올리면서 강렬한 기쁨에 사로잡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대목을 가리켜 일상의 추억이 주는 소소한 행복으로 인해 삶의 고양(高揚)을 느끼는 심리 상태를 '프루스트 효과'라고 한다.
포스팅한 풍경은 해운대 어느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관사로 가는 길에 찍었던 사진이다. 쓸쓸했지만 그때 바라본 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코끝을 스치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얼마나 상쾌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도 내 몸과 정신에 그 감각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지금도 하늘을 보면서 그 하늘을 떠올린다.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먹으면서 어린시절의 한때를 떠올린 것처럼.
꼭 거창한 뭔가를 해야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느냐에 달렸다. 그렇다고 너무 오랫동안 그러고 있으면 곤란하다. 그 시간만큼 지금 누려야 할 풍경과 기억할 대상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중에 지금을 돌아볼 때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을 수도 있다. 11월이 이렇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