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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08. 2022

꼭 큰일만 할 필요는 없다

로렌스 형제 / 하나님의 임재연습

"중학교 때 루틴(routine)이란 단어를 처음 배웠다. 루틴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었다. ‘판에 박힌’ 일과나 ‘지루한’ 일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우유(커피)를 마시고 공부(일)하고 점심 먹고 공부(일)하고 하교(퇴근)하는 것. 오늘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고 아마 내일도 오늘과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루틴은 삶의 진부함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커가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루틴이 있기에 우리는 애써 생기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닐까. 판에 박혔다거나 지루하다는 말에서 편안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제는 이 규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다. 루틴이 심신을 만든다."


<오은 시인>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아무런 감흥도 기쁨도 없다. 그저 어제 하던 일을 오늘 다시 반복하고, 내일도 오늘과 특별히 달라질 것이 없다. 삶은 평범한 보기에 따라서는 별 의미가 없는 일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나고 보면 특별히 남는 게 없다. 추억도, 기억할 만한 일도, 물론 의미도. 내가 하는 일과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미를 먹고산다. 내가 하는 일이 남들이 보기에 보잘것없고 하찮게 여겨져도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면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 되는 것이다. 수도원에 사는 수도사들은 각자 맡은 일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원내를 청소하는 사람,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설거지를 하는 사람 등등.


중세 시대에 살았던 로렌스 형제(Br. Lawrence)는 1666년에 55세의 나이로 부족한 자신에게 훈련이라도 시키려는 듯 수도원 행을 택했고 거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파리의 카르멜 수도회에 들어가면서 로렌스 형제로 불리게 된 것이다.


평신도 형제의 자격으로 들어간 수도원에서 로렌스 형제는 주방 일이라는 평범한 일을 맡았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면서 고될 대로 고된 일상이 반복됐지만, 스스로가 부여한 의미와 믿음 속에서 그들은 분주하고 힘든 일상 속에서 내적 평강을 맛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들의 행적을 기억하는 건 그들이 한 일이나 성과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특별한 마음가짐과 믿음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설거지를 하는 순간에도 귀찮다거나 별 의미 없는 무의미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 누군가가 먹고 남긴 음식을 처리하고 그릇을 닦을 때 마치 옆에서 하나님이 보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드신 식기를 닦는 듯이 열심히 주방 일을 했다. 그들이 그 평범한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하나님의 임재연습>이라는 책에 잘 서술되어 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평범한 일도 비범하게 해낸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이 아닌 의미를 성취했는지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성공은 보이는 결과가 아닌 곧 의미의 성취를 뜻했던 것이다. 결과는 의미를 추구하다가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것에 불과하다. 삶이 새로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루틴하고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충실히 살아낸 사람만이 언젠가 주어질 중요한 상황과 일에도 충실할 수 있다. 로렌스 형제는 단조롭고 지루한 주방 일을 하면서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내게 주어진 어떤 일도 나에게 중요하지 않거나 의미 없는 일은 없다. 여전히 의미를 두지 않는 나 자신이 문제일 뿐.

"삶에서 꼭 큰일만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프라이팬의 작은 달걀 하나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뒤집는다. 그 일도 다 끝나 더 할 일이 없으면 나는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한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그분이 주시는 은혜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일어날 때면 나는 어느 세상 나라 왕들보다도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설령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해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방바닥에서 티끌 하나만 주워 올릴 수 있어도 만족할 것이다."


<로렌스 형제 _ 하나님의 임재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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