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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03. 2021

반 복

기 드 모파상/여자의 일생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는 말한다.


"하루하루는 생의 나뭇잎 하나이다."


언젠가 떨어질 나뭇잎처럼 오늘 하루도 어제와 다를 바 없어서 별 의미 없이 느껴진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하루하루가 큰 차이가 없이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에도 무료한 날을 묘사한 이런 글이 나온다.


“그날 하루가 전날처럼 흘러갔다. 그 주의 다른 날들도 처음 이틀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달의 모든 주가 첫 주와 비슷했다.”


주인공 잔느의 일생도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남편에게서, 그리고 아들에게서 얻고자 했던 사랑은 헛된 기대로 끝났다. 당시 여자의 일생이 지닌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말년에 이르러서야 이런 현실을 깨닫고 힘들어한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들, 회한만이 남았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그녀의 삶이 된 것인데도.



우리 역시 잔느와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나무가 나뭇잎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듯, 삶도 그 하루하루가 없이는 계속될 수 없다. 하루는 삶이 지속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나무는 평생 제자리를 지키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데, 우리는 그 시간을 지겨워한다. 지루하게 느끼는 건, 우리 인간밖에 없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지만, 그 자유로움이, 능력이 오히려 우리를 속박한다고 느낀다.


이런 현실 앞에서 가끔 신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차라리 나무와 같았으면 좋았겠다고. 그러나 이건 틀린 생각이다. 문제는 그 의지와 시간을 바르게 쓰지 못한 인간에게 있지, 신에게 있지 않다.





며칠 전 산책을 하면서 빗방울에 살짝 젖은 나뭇잎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나뭇잎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찬란한 순간이리라. 나도 마찬가지일 테고. 아름다움은 원래 찰나가 아니던가.


매일 지나가는 길이지만 같은 풍경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늘 색깔, 구름 모양, 나뭇잎의 흔들림까지도 모두 달랐다. 자연은 나름의 시간 속에서 각각 다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한 이유는 내 평생에 다시 못 볼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무에게도 마찬가지고.




반복되는 것 같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이다. 내일이 돼도 오늘이 반복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이렇게 말한다.


"사소한 일상의 반복을 통해 나는 최면에 걸린 듯 더 심원한 정신 상태에 이른다."


반복은 지겹기도 하거니와 그것이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면 의미를 찾기도 어렵다. 그런데 정작 지나고 보면 정말 소중했던 건 그 사소한 일상이었다.


하루키처럼 반복을 통해 심원한 정신 상태까지는 이르지 못해도, 사소해 보이는 일상을 제대로 반복하지 못하면 중요한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물론 삶이 주는 아름다움을 찾기는 더더욱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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