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되지 않으면 가급적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점이다. 세월이 지나야 조금이라도 바뀌는 점이 있긴 있나 보다. 사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제는 나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아니면 더 큰 뜻이 있을 거라 믿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거다.
믿음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미리 믿는 것’이라 했다. 문제는 그때까지 견딜 수 있는지다. 우리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내가 그랬으니. 때로 무뎌질 필요도 있다.
어제 밤늦게 산책을 하면서 보니 한동안 몸을 움츠러들게 했던 추위가 좀 풀렸다. 눈 위를 나뒹구는 마른 잎들, 잎들은 제 할 일을 다하고 조용히 땅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나무는 잎들을 떨군 채 분신과도 같았던 잎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고. 아름다운 것은 낮은 곳으로 향하다가 이내 사라지고 만다. 내 삶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일.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
<김진영 _ 아침의 피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