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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04. 2021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할까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89>를 본 건 대학 초년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대학 1학년이었던 것 같다.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알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때는 영화가 그냥 재미있고 참신하다는 정도였다. 여주인공의 매력적인 모습이 기억에 남는 정도...


세월이 흘러 영화를 다시 봤을 때 그때 깨닫지 못했던 사실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남녀의 심리 차이, 생각 그리고 서로를 대하는 자세 등등. '남녀 간에 친구가 가능할까'라는 다소 진부한 질문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결국 친구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이미 동감하는 바였지만.

남자와 여자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지점에서 사랑은 시작된다. 문제는 그게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는 거다. 좋을 때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시간이 흘러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다름은 오히려 서로를 해치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상처가 아물지 못해 결국 끝나는 커플도 부지기수다.


서로를 좋아해서 시작된 사이가 나중에는 좋아했던 점까지도 증오의 일부분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사랑이 지닌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인간의 한계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하여, 인간에게 있어 사랑은 끊임없이 추구하고 완성해 가야 할 가치이지 실현된 현실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해리와 샐리의 관계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그들이 끝까지 잘 살았을까 하는 의문도 없었던 건 아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아마 잘 살았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거쳤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다시 만났으니 그 상처를 서로 잘 보듬었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

공유할 일이 있거나 기억할 추억이 있으면, 그 추억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낼 수 있다. 어려운 시기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확인되는 관계도 있다. 해리와 샐리처럼.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전에 실패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오래갔을 거라고 믿는 근거는 마지막 장면에서 해리가 샐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밖이 71도 인데도 춥다는 당신을, 샌드위치 주문에도 1시간이 걸리는 당신을, 헤어진 후 내 옷에 배어있는 향수의 주인공인 당신을, 무엇보다 내가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당신이기에 사랑해.”




둘은 서로의 한계를 깊이 공감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니 위기의 순간에도 이 마음으로 잘 버텨냈을 것이다. 좋은 점, 나쁜 점 모두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이고 사람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도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영화를 다시 보니 주인공들 역시 세월은 피할 수 없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부식시킨다. 아름다움도 한때이듯(여전히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지만). 하지만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샐리 역의 맥 라이언의 매력은 여전하다. 물론 영화 캐릭터의 매력이다. 귀엽고 예쁜 외모를 떠나 해리를 대하는 자세, 눈빛에서 그녀가 동양적인 감수성을 지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에 본 그녀의 영화들 역시 비슷했다. 아마 그런 점에 더 끌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맥 라이언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가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그만큼 영화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물론 상대역인 해리 역의 빌리 크리스탈의 연기 또한 일품이지만.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결국 잘 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영화와 너무 다른 상황에 씁쓸해진다. 뒤늦은 깨달음 그리고 후회, 돌아갈 수 없는 순간들…그래서 이 영화가 내겐 애틋하다.


참고로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해리 코닉 주니어의 음악 역시 영화만큼 감미롭다. 지금 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들의 사랑만큼이나…사랑은 언제나 새롭다. 진부한 건 우리 인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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