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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25. 2022

산타 클로스 지키기

크리스마스 / 상실의 시대

어제, 빵을 사러 들른 빵집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자주 가서 안면이 있는 점원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줄이 너무 길어 그냥 나올까 하다가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그냥 기다렸다.


크리스마스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누군가에겐 힘든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지금은 무뎌졌지만. 아니, 무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하다. 어렵게 빵을 사서 돌아오는 길, 잔뜩 흐린 하늘을 보며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이 글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들고 북해 상공을 덮은 검은 구름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많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 죽거나 떠나간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


사는 건 결국 소멸되는 거다. 시간도, 같이 있던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어떤 다짐도 세월 앞엔 무력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상실의 시대>로도 불린다. 나는 그 <상실의 시대>를 읽었고 와다나베처럼 나도 그 상실의 시대를 살아야 했다. 이 순간 와다나베의 그 헛헛한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오늘은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데 있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넘어 추운 겨울,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보내는 따뜻한 휴식의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도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릴 때 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과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다. 


한때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으니,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쩌면 예수도 그 따뜻한 기억 속에서 자신을 기념하기를 바랄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키의 말처럼 우리 모두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 상실했던 기억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살아 있을 테니까.  

"미국의 뇌과학자 켈리 램버트 박사는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산타의 존재는 아이에게 마음의 예방접종과 같다'며 산타의 선물이라는 픽션을 가능한 한 오래도록 아이의 마음속에 남겨 두라고 조언했다. 


사람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게 되지만 뇌 속에는 시간여행(mental time travel)을 위한 시스템이 내장돼 있어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행복했던 과거의 감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되새김할 수 있는 좋은 기억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니 올해 크리스마스도 산타 지키기에 전력을 다할 일이다. 조금 더 크면 만나게 될 험한 세상을 견딜 힘을 비축해 주는 것. 그것이 웃을 일 별로 없는 세밑을 사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인 것 같아서다." <2014. 12. 24. 중앙일보, 이영희 기자 '오늘 밤 산타는 옵니다'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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