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순간만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옳지 않을까? 아무 계획도 하지 말고 오직 하루하루를 살아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망각하도록 모든 수단을 써서 감각을 무디게 해야 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서 죽음에 대한 생각마저도 무디게 하라는 전혜린의 말이다. 과연 이 방법밖에 없을까? 아니,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혜린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불과 31살의 나이로 요절한 그녀의 말이기에 그 무게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그녀의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를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 뜻도 모르고 무작정 읽었다. 그때도 어젯밤처럼 추운 겨울밤이었다. 방안의 냉기를 이겨내기 위해서 이불을 쓰고 읽었던 책이 바로 그녀의 책이었다.
과거는 해석이 안되고 현재는 엉망진창이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 요즘, 특히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염려하다 보면 '지금'은 무시되기 쉽다. 죽음에 대한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이 생각에서 벗어나는 길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쓸데없는 생각을 무디게 하는 것, 비록 완전히 없애지 못하더라고, 바로 그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녀의 조언을 가슴에 새긴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무디어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