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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17. 2022

붙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아주 오래전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은 적이 있다. 무려 3권짜리 1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이다. 읽는 내내 힘들었다. 스토리는 간단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간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역사와 그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진도를 나갈 수 있으니, 그 당시 내 수준에서 오래 읽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톨스토이의 여러 책 중에서 제목만 보고 좀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겠네, 했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쁜 일도 있어 틈틈이 읽어야 했지만 그래도 다 읽는 데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무려 6개월. 오늘은 안나의 사랑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한다. 안 그러면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까.


안나는 우연히 브론스키와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유부녀가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으니 시대가 그녀를 용납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온 마음을 다한 그 사랑조차도 변하고 마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사랑이 무모했던 것일까 아니면 브론스키의 변심 때문이었을까. 결국 그녀는 사랑 때문에 죽음을 택한다. 

이에 대한 한은형 작가의 평이 이렇다. 


"마음이 식어버린 연인에게 '내가 잘할게'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식어버린 사람을 붙잡는다고 해서 붙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고, 그럴수록 그 사람과 멀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고, 머리로는 그렇게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그렇게 머리로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내가 나를 어쩔 수 없었다. 


돌아온(물론 그의 사랑은 다시 식는다) 브론스키는 말한다. 우리의 사랑은 강해졌으며,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고. 이렇게 적고 보니 가소롭기 짝이 없지만 사랑이라는 게 그렇다. 


사랑의 말들은 한 발짝 멀어져서 보면 유치하고 졸렬하기 그지없다. 이 사랑의 맹세 때문이었을까? 안나는 회복된다. 이 ‘유사 죽음’의 체험이 안나에게 남긴 교훈은 이렇다. ‘사랑이 위험해졌을 때는 죽음을 이용하라.’ 그래서 그녀는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졌다. 사랑했다. 그것도 지나치게. 안나 카레니나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랑은 무모한 것이고 앞뒤 가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나치게 계산적인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랑은 숫자나 논리로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찌 안나의 사랑이 무모하다고, 어리석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녀의 열정을 갖지 못한 내가 부끄러울 뿐이다. 


나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잔인한, 그러나 우아하게 잔인한 톨스토이를 존경한다. 사랑은, (꼭 이 책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감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안나가 브론스키에게 한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이렇게 돼 주었으면 하는 것은 아니에요. 당신은....당신은 이 일을 후회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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