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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08. 2023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벌써 몇 년 전, 검찰을 떠나 잠시 변호사를 할 때의 일이다. 검찰 출신이다 보니 주로 형사사건을 맡게 되지만 지인의 부탁으로 특이하게 이혼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 소송을 하고 싶다면서 상담 요청이 들어왔던 것이다.


만나보니 의뢰인은 결혼한 지 불과 2년이 채 안 된 신혼이었다. 요지는 결혼 전에 있던 채무를 배우자가 뒤늦게 알게 되면서 부부간의 불신이 쌓여 신뢰가 깨진 사례였다.


사람들은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상대방의 말을 얼마나 진지하게 참고 들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중간에 말을 끊거나, 들으나 마나 한 말이라고 치부하면서 자기가 섭섭했던 부분만 강조하면 대화는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렵다. 대화가 안 되는 부부가 있다는 말이다.


결국 얼마나 참고 인내하면서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게만 한다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가 별로 없다. 대화의 부재, 회피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 이 부부가 그랬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잠시 들어보면 굳이 끝까지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 투성이다. 그러나 의뢰인 입장에서는 자기 말을 들어주기를 원한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말이다. 그건 의뢰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렇다. 그래서 아는 내용이지만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당연히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도.


이번 사례도 의뢰인의 이야기를 장시간 들어주었던 것이 해결의 실마리였던 것 같다. 나는 중간중간 말하기 편하도록 화제를 전환하는 정도만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충분히 다 듣고 나서 비로소 내 생각을 말했다.


아직 신혼이니 좀 더 대화를 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좋겠다고, 그래도 어려우면 서로 냉각기를 갖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그게 어려우면 의뢰인부터 그렇게 노력해 보라고 했다. 지극히 일반적인 조언이었다. 이 부부의 문제는 부부간의 애정이나 감정 문제가 아니라 외부적인 문제이므로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문제라는 말도 해주었다.


아울러 내가 힘들었던 시기에 겪었던 일들도 들려주었다.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있지만 때로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가 있다. 감정은 일시적이지만 그 순간을 참으면 감정의 실체가 보일 수도 있다.


내가 이 사람과 살 수 없을 정도로 이 문제가 심각한지, 좀 더 인내하면서 대화를 시도해 보면 오해가 풀릴 수도 있다.'고. 의뢰인은 내 말에 눈물을 흘리며 귀가했다.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그로부터 몇 주일 후 의뢰인의 어머니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 조언대로 해서 의뢰인이 사위와 잘 화해했다는 것이다. 고맙다는 말도 전해왔다. 상담비라도 드려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길래 그럴 필요 없다고, 잘 살게 되었다고 하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씀드렸다. 한 가정이 내 조언으로 다시 화합해서 잘 산다면 변호사로서 그것만큼 보람된 일도 없다.


우리는 모두 한계와 약점을 지닌 인간이다. 완벽한 사람도 없고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상대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그 지점에 가서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아, 사랑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우리가 고통과 인내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있는 것 같아요. 


<헤르만 헤세 _ 페터 카멘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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