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Jul 07. 2021

일상의 귀한 경험

기억과 추억/무라카미 하루키/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어제는 뭘 찾을 게 있어 오랫동안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야 했다. 집에 있는 물건이라고 해봤자 별게 없는데, 이상하게 그 물건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집이 단출하니 더 찾기가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짐이 많으면 찾기 쉽게 정리를 해놨을 텐데.


정작 찾아야 할 물건은 찾지 못하고, 서랍 속에서 이제 사용하지 않는 아이폰5s가 눈에 띄었다. 어, 이게 왜 여기에 있지? 버튼을 눌러보니 전원이 들어온다. 아, 이게 얼마 만인가? 2013년도에 산 거니 벌써 오래되었다. 무엇보다 잊고 지냈던 거라 더 감회가 새로웠다.




아이폰이 처음 들어올 때부터, 아니 그전에 아이팟부터 사용했으니 소위 '애플빠'까지는 아니지만 애플 제품을 사용한 지 오래됐다. 아이폰을 사용하게 된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아이폰 3Gs를 당시 근무하던 법무부에서 업무용으로 지급해 주었던 것이 아이폰과 처음 맺은 인연이다. 그때만 해도 아이폰이 첫 스마트폰이어서 신기하기만 했다.


법무부를 떠나면서 아이폰3Gs는 반납하고 자비로 아이폰을 샀다. 다른 아이폰들은 없어도 아이폰5s는 여태껏 가지고 있었던 것은 디자인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애플 뮤직을 이 아이폰으로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찾은 아이폰5s에는 그 시절에 들었던 곡들이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


애플 뮤직이 처음 나올 때는 우리나라는 비활성화해놔서 접근할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미국 연수 중에 살았던 아파트 주소를 입력해서 미국 계정으로 들었다. 그런 이유로 아이폰5s는 내게 소중한 물건 중에 하나다. 애플 뮤직도 그렇고.




잊고 있었던 물건을 찾아도 이렇게 기쁜데, 이제는 연락이 끊어져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만나면 그 기쁨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물건과 달리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그리고 오랫동안 보지 못하면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다. 어색하지는 않을까.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그때 그 마음으로 그 사람을 대할 수 있을까. 아이폰을 찾고 든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그렇게라도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아이폰5s는 이제는 구형이고, 사소한 물건에 불과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소중하다. 그 시절 함께 겪었던 경험과 추억이 아이폰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람 역시 다르지 않을 터.




"물론 그런 나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영원히 잃어버린 뒤겠지만, 그러나 기억만큼은 신선하게 머물러 그것이 우리의 남은 (애처로운 일이 많은) 인생을 꽤 유효하게 덮혀줄 것이다. 설령 나이를 먹어도 그런 풋풋한 원풍경을 가슴속에 갖고 있는 사람은 몸속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다지 춥지 않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돈도 소중하고 일도 소중하지만, 진심으로 별을 바라보거나 기타 선율에 미친 듯이 끌리는 시기란 인생에서 아주 잠깐밖에 없으며 그것은 정말 귀한 경험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 돈을 벌어야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 삶을 채울 수 없다. 일을 통해서 중요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시간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일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시간 등이 더 기억에 남는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기억이고 추억이기 때문이다.


힘든 순간을 버티게 하는 건 그런 경험들이다. 특징이 없는 길을 걸어도, 무의미한 이야기를 해도, 값싼 자판기 커피를 마셔도, 아무 말 없이 같은 곳을 바라보아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다면 그 자체가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나중에 그런 경험들이 추억으로 남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사소한 기억들을 추억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는지 모른다. 추억할 일이 많은 사람은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다.


Kings of Convenience는 애플 뮤직을 통해 알게 되었고, <Homesick>는 이번에 아이폰5s에 저장된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에 그대로 남아 있는 곡 중에 하나다. 그래서 나에게는 소중한 곡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할수록 거리를 두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