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내 마음의 문장들
일요일 아침, 단조로운 Bach의 음악을 듣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Pop도 자주 듣는 편이지만, 오래 듣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좋은 곡도 자주 듣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잊을만하면 신곡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르겠다.
클래식은 다르다. 팝에 비해 다소 지겹고 무료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무료함 때문에 쉽게 질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듣는 곡 역시 그 시절엔 유행했던 음악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듣고 있는 건, 그 곡들이 세월을 통과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화려한 건 순간이지만, 수수한 건 오래가는 법이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쉽게 좋아지면 쉽게 멀어진다. 관계가, 좋은 인연으로 남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때로 무료하고 답답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시간 없이 오래가기는 어렵다. 관계 역시 시간의 단련을 받아야 한다. 세월 속에 살아남은 관계만 영원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 역시 음악을 많이 닮았다.
지난 토요일, 강릉에 다녀왔다. 그냥 바람을 쐬고 싶었다. 떠오른 것이 강원도였다. 주말에도 거의 집에만 있었으니 뭔가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차가 막혀 고생했고, 막상 가니 별게 없어서 실망했지만, 과정 자체가 여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목적지가 어떠했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은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니, 또 다른 느낌이다. 플레이리스트에 저장된 이 음악, 저 음악을 들었다. 마땅치 않았다. 들을 때는 좋다고 해서 리스트에 넣어놨는데, 왜 별로인지? 잘 모르겠다. 자주 들어서 식상했다고 할 밖에는.
늦은 밤, 집에 들어오니 피곤함이 밀려온다. 피곤해서 오히려 쉽게 잠들지 못했다. 피곤도 적당해야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것 같다.
언젠가 읽은 다자이 오사무의 글이 떠올랐다. 그는 <옛날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다. 당신이 나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멋쟁이라서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문득 좋아지는 것이다."
삶이 꽃처럼 아름다워서 사는 것도 아니고,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탈 때처럼 마냥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가 좋아지는 것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듯, 내게 주어진 생도 이유가 있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