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뉴욕제과점
다크초콜릿의 첫맛은 씁쓸하다. 카카오 함량이 높을수록 더 그렇다. 90% 함량까지 먹어본 적이 있다. 이걸 무슨 맛으로 먹나 싶었다. 서랍에 넣어두고 몇 주를 보냈다. 초콜릿이 있다는 것도 까먹었다. 어느 날 우연히 서랍에서 물건을 꺼내다가 그 초콜릿을 발견했다. 다시 한번 먹어봤다. 역시 씁쓸했다.
그런데 처음과 달리 몇 조각을 더 먹어보니 묘한 맛이 느껴진다. 씁쓸함 속에 달콤함이 숨어 있다고 할까. 이 맛에 먹는구나... 인생은 다크초콜릿의 맛과 비슷하다. 씁쓸하지만 잘 음미해보면 단맛이 스며 있다. 핵심은 쓴맛이다. 쓴맛을 참아야 단맛까지 맛볼 수 있다. 끝까지 음미하지 못하는 게 우리의 문제다.
살다 보면 씁쓸한 일을 자주 겪게 된다. 누굴 만나는 것만 해도 그렇다. 젊을 때는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나지만, 나이가 들면 그런 만남을 기대하기 어렵다. 나한테 득이 되지 않으면 굳이 만나지 않으니까. 만나더라도 여러 상황을 따진다.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그런 탐색 끝에 만나니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이는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 관계는 분석의 대상이 아닌데도 말이다.
어쩌면 다크초콜릿보다 더 씁쓸한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초콜릿과 달리 뒷맛이 개운찮다. 다크초콜릿은 몸에라도 좋지만, 인생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제 점심에 동료와 산책을 하면서 그런 인생에 대해 말했다.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빌 게이츠 이혼 문제부터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나온 결론은 "그래서 인생은 씁쓸한 거야."라는 거다. 따지고 보면 돈이 문제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대학 시절에는 돈이 이 정도까지 내 삶을 지배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은 누굴 만나도 집 걱정, 돈 걱정뿐이다. 애들 걱정도 결국 그들이 잘 살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돈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세상이 마땅치 않아서 은퇴하면 어디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다. 조용히 책을 읽으며 살고 싶은 마음뿐. 젊어서부터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며 처음 간직했던 순수했던 마음과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거다.
삶의 즐거움을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기대했던 사람의 무관심을 확인할 때 씁쓸해진다. 내 마음 같지 않은 것이다. 하긴 마음이란 것이 보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겉으로 드러난 그 사람의 언행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게 아니었다고 변명해도 그런 게 아닌 것으로 되는 게 아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은, 기대하면 실망만 하게 된다. 이래저래 인생은 씁쓸하다. 그러나 그 씁쓸함을 받아들이면, 혹시 아는가? 초콜릿의 뒷맛처럼 달콤함이 숨어 있을지를.
"서른이 넘어가면 누구나 그때까지도 자기 안에 남은 불빛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게 마련이고 어디서 그런 불빛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한때나마 자신을 밝혀줬던 그 불빛이 과연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알아야만 한다.
한때 반짝였다가 기레빠시마냥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 불빛이나마. 이제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불빛이나마."
<김연수, 뉴욕제과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