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마음 읽기
아침은 ‘나’를 만나기 좋은 시간이다. 잠을 통해 세상과 잠시 단절되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나면 전날의 고민과 생각, 경험 등이 모두 사라진다. 오로지 나만 보인다. 리셋이자, 일종의 백지상태가 되는 셈이다.
어젯밤에는 잠을 설쳤다. 어렵게 잠들기도 했지만, 새벽에 일찍 깼다. 자기 전에 에어컨을 꺼서 그런지 방안이 더웠다. 마루로 나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방보다 시원하긴 한데, 이런 상태로 계속 있을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일어나는 수밖에.
세상은 늘 복잡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조용히 나를 만날 시간이 필요하다. 잠에게 깬 새벽만큼 좋은 시간도 없다. 그동안 내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수없이 질문해도 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들을 생각하기 좋은 시간이다. 문제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려 가는 시간, 그 시간에 기도하거나 명상을 할 수도 있겠다.
다음은 문태준 시인이 중앙일보 칼럼 [마음 읽기]에서 쓴 글이다.
추사 김정희의 여름 시편에는 “더위를 피하는 법 이제 알았네/ 고요가 극에 가면 마음이 비어/ 푸른 술은 석 잔을 기울였는데/ 개인 뫼는 육여(六如)와 흡사하구나”라는 시구가 있었다. 육여는 불교에서 말하는 육유(六喩)를 일컫는다. 존재의 무상함이 곧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갯불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사는 비 그친 여름 산의 변화무쌍함을 이 여섯 성질과 다름없다고 본 것일 테다.
여름 산의 계곡과 봉우리에서 일기가 수시로 변화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되 그 관찰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함께 느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시구에서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고요를 얻고 마음의 텅 빔을 얻는 것에 있다고 쓴 대목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음에 번뇌가 적고 몸에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를 적정(寂靜)이라 하는데, 이 적정에 이르면 더운 줄을 모르게 된다는 뜻일 테니 마음을 항복받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테다.
<문태준, 출처: 중앙일보 [마음 읽기] 장마와 폭염>
어떻게 하면 고요를 얻고 마음의 텅 빔을 얻을 수 있을까? 각자 방법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욕망을, 기대를 줄여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내 마음에 채워진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욕망과 기대가 있으면 고민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얻지 못해 고민하고, 얻기 위해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번뇌와 갈등 또한 거기에서 유래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도 다를 바 없다. 그런 감정들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한, 추사의 말처럼 적정한 상태에 이를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욕망과 기대를 내려놓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문제는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해결방법도 나한테서 찾아야 한다. 그동안 외부에서,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 상황에서 찾았으니 힘만 들고 해결이 안 됐던 거다.
그리고 이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고 부드러워져야겠다. 모든 사람에게, 특히 나에게 적대적이거나 불친절한 사람에게까지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상대의 반응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고 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건 결국 내 탓이다. 내 안에 꽉 차 있는 불순물 때문이다. 그래서 더 덥고 짜증이 나는 거다. 짜증이 나는 건, 결국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데서 오는 불만이니 그것 또한 내가 문제다. 옛 시인의 조언을 되새기는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