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쇼코의 미소/산책
퇴근하고 하는 게 있다. 인왕산 둘레길 산책이다. 1시간 남짓 걷는데, 2년째다. 한적한 산길을 걸으면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걸었다. 저녁 약속이 있어 늦게 귀가해도 아주 늦지만 않으면 걸었다.
그렇게 걸은지 수년째다. 어떤 날은 걸어도 전혀 힘이 안 드는 날이 있는 반면, 어떤 날은 한 걸음 떼기도 벅찰 때가 있다. 이제는 그런 날이 적어졌다.
걷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생각이 정리된다. 미련도 많이 버릴 수 있다. 힘이 들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어느새 걷기는 버릴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인왕산 둘레길이 좋은 건, 숲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등산까지는 아니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 지루하지 않다. 이 길에서 아쉬운 점은 한적하다 보니 오토바이가(스포츠카도 마찬가지다) 많이 지나다닌다는 거다. 오토바이가 내는 소음이 귀에 무척이나 거슬린다.
인간을 위해 만든 길이지만, 엄밀히 산의 주인은 우리가 아닌데, 늦은 시간에 저렇게 소리를 내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곳에 사는 동물, 나무들도 밤에는 쉬어야 하는데, 굉음을 일으키면서 오토바이가 지나가니 얼마나 힘들까. 어딜 가도 편안히 쉴 곳이 없다. 물론 내 마음이 분주하고 여유가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오토바이에서 나는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소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대학에서 사법시험 준비를 할 때 옆자리에서 공부하는 사람으로부터 내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거슬린다고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한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신경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러니 항상 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로 인해 불편하지 않는지를.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언제나 기억한다."
<최은영, 한지와 영주>
사람들은 왔다가 떠나고.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물만 흐름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인연을 비롯한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내 곁을 흘러갔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스쳐가는 사람이었을 거다.
그래도 기억은 남는다. 좋은 기억이든 좋지 않은 기억이든.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 기억도 언젠가 그 사람과 함께 사라지겠지만. 그래서 함께 있을 때 좋은 기억을 남기려고 노력해야 한다.
1년 전 오늘, 그때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이 길을 걸었다. 그날은 달빛이 무척 밝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걸으면서 드뷔시의 <Clair de Lune>을 Alice Sara Ott의 연주로 들었다. 벌써 1년이 지났다니 세월이 빠르다. 누구 말대로 월요일인가 싶더니 벌써 금요일이다. 이렇게 2021년 7월도 가고 있다.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최은영, 모래로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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