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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17. 2023

행 복

다자이 오사무 / 사랑과 미에 대하여

어떤 상태가 되어야 행복한 것일까? 동서고금, 수많은 철학자와 현인들이 찾았던 답이다.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답을 찾았을까. 여전히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 잘 모르겠다.


행복하기 위해선,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를 넘어서 그 이상의 뭔가가 채워져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즉 내가 원하는 물건을 갖거나 원하는 지위를 얻는다고 행복한 것 같지도 않다. 얻는 순간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기분이 좋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새 차를 샀다고 해보자. 새 차를 처음으로 운전하던 날, 물론 좋았다. 그런데 그 기쁨이 얼마나 가던가? 오히려 새 차라서 흠집이 날까 봐, 누가 긋고 갈까 봐 노심초사한다. 내가 물건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하고 마니,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고 해도, 역시 그 순간뿐 그 이후엔 자리가 주는 책임으로 힘겨울 때가 더 많았다.


그래도 원하는 것을 얻은 경우는 그나마 낫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원하는 것을 얻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기회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불행한 것일까.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소풍 가기 전날, 기대감에 잠도 잘 오지 않고 마치 소풍을 가는 내일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조바심에 빠진 적이 있었다. 자는 둥 마는 둥, 막상 소풍을 가는 날 아침이 되면 설레던 기분은 잠시,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던 것 같지 않다. 지금 와서 깨닫게 되는 건, 소풍 가기 전날의 '그 기대감, 그 설렘'이 소풍날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었다는 사실이다.


뭔가를 얻으면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어쩌면 우린 행복한 순간을 짧게 느끼거나 거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런 기대감을 갖고 사는 지금 이 상태를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기대가 늦게 성취될수록 그만큼 더 행복한 시간은 길어진다. 며칠 전 읽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에서 나와 생각이 비슷한 부분을 발견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사랑과 미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노(老) 박사의 이야기다. 그는 고매한 인품만큼 세상에 섞이지 못한 채 쓸쓸하게 살아간다. 어느 여름밤, 그는 도쿄의 번화가인 신주쿠로 산책을 나간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는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바깥은 사람들의 물결이 엄청나요. 서로 밀고, 밀치고, 모두들 땀에 절어 있는데, 그래도 아닌 척하고 걷고 있어요. 걷고 있다 해도 무엇 하나 이렇다 할 목적은 없는데, 그래도 모두들 일상이 쓸쓸하니까, 무언가 은근한 기대를 품고 아무렇지 않은 척 밤의 신주쿠를 돌아다녀 보는 거예요. 아무리 신주쿠 거리를 이리저리 걸어보아도, 좋은 일은 없어요. 하지만 행복은, 그것을 어렴풋이 기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지요. 지금 세상에서는, 그렇게 생각해야만 해요."


뭔가 새로운 것이나 즐거운 것을 찾아다니지만 특별히 좋은 일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는 불행한 것일까. 아니다. 행복은,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어렴풋이 뭔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기대 자체가 행복인 건지도. '과정 속에서 찾는 기쁨', 내가 추구하고 싶은 행복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산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기대가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는 그다음 문제, 그 기대를 버리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행복한 거다. 황동규 시인 역시 <즐거운 편지>에서 노래하지 않았는가.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라고.


영화 <유브 갓 메일, 1998>에는 캐슬린 켈리(배우 멕 라이언)가 인터넷 대화상대인 조 폭스(배우 톰 행크스)가 보낸 메일을 열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이 대사가 나온다. "그 순간만큼은 뉴욕의 소음도 들리지 않아요. 거리의 소음도 안 들리죠. 오로지 내 심장이 뛰는 소리뿐.”


행복은 주관적인 느낌이어서 틀리고 맞고의 정답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행복은 신념이자 믿음, 무엇보다 기대의 문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우매한 자의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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