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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20. 2023

雪 國

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

얼마 전 강원도에 눈이 많이 왔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설경을 보고 있으면, 교통이 막히고 불편한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세상에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눈이 오면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 -1972)의 <설국雪國>이다. 소설을 통해 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인간의 삶과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살면서 무엇을 잃고 사는지도.


나는 소설 속에 나오는 이런 문장을 좋아한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아픔과 허무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마무라는 공허한 벽에 부딪는

메아리와도 같은 고마코의 소리를,

자신의 가슴 밑바닥으로

눈이 내려 쌓이듯 듣고 있었다.



시마무라의 가슴 아픈 사연을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가슴 아픈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처럼 그녀의 말을 가슴 밑바닥까지 눈이 내려 쌓이듯 듣지 않아서 문제지만.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 기품 있게 묘사할 수 있다니, 나는 이 문장 앞에서 한동안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소설은 기억할 만한 사건도, 특별히 교훈적인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 그런데 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까. 인간의 흔한 감정을 작가만의 특별한 언어로 개성 있게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사랑한다고 말하긴 쉽지만, 왜 사랑하는지를 이해시키기는 어렵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작가의 그런 노력이 담겨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연인을 향한 간절함과 애틋함이 그 감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표현되는 절박함에 담겨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사랑한다는 말이 없어도 사랑한다고 느낄 수 있다. 나는 그게 문학, 즉 문장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인간의 감정을 감성적으로 자연과 대비시켜 표현하고 있다.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으로.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다.




왜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가? 소설을 읽는 것이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쁘게,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한 것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 돌아가는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어디 인간의 삶이 유용, 무용의 잣대로만 판단할 수 있는가? 때로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런 글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문(美文)과 부딪혀야만 비로소 잠든 정신과 감성이 깨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만큼 삶은 풍요로워진다.


<설국>의 그 유명한 첫 문장. 이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무려 12년 동안이나 문장을 다듬은 가와바타의 노력이 있었다. 아름다운 문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뚜렷한 주제가 없지만 그래서 이 소설은 우리 인생을 닮았다. 살아온 세월에 대한 여운과 이별한 연인에 대한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남는 것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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