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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25. 2023

이상과 현실

가브리엘 마르케스 / 콜레라 시대의 사랑

삶을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지 마.

굳이 오지 않은 미래를 가늠할 필요도 없고.


그나저나, 같이 늙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

초라해짐을 보여도 참 괜찮을 서로라는 생각도.


<가브리엘 마르케스 _ 콜레라 시대의 사랑>

<러브레터, 1999>

한때는 사랑했던 연인들이 헤어지고, 서로를 증오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사랑했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쩌면 애써 외면했다는 것이 정확하리라.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상에 사로잡혀 현실을 외면했던 것일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우리의 사랑과 감정도 그렇다.


강렬했던 사랑,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특별했던 시절. 사랑해서 함께 살다 보면 세월과 함께 처음 가졌던 감정과 열정은 퇴색하고 상대의 약점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같이 살기 전에는 왜 몰랐을까, 스스로를 탓해 보지만 그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일 뿐, 그를 보는 내 시선이 바뀐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세월은 모든 것은 부식시킨다. 더불어 초라해지는 건 피할 수 없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면 익숙함으로 버텨 보겠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서로의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지 모른다. 정으로 버틴다는 것도 고루하고, 삶의 편의를 위해 서로를 견디며 마지못해 살아야 한다면 그건 더 씁쓸하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평생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 빛을 잃을 무렵,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함께 늙어가고 싶다는 다짐을 다시 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자꾸 상대의 초라해진 모습만 탓하지 말고. 그럴수록 나만 더 초라해질 뿐이다.


사랑은 열정으로 시작되지만, 연민으로 완성된다. 사랑은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훨씬 더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주인공의 고백은 현실에선 흔하지 않다. 어쩌면 지금보다 어려웠던 그 시절의 사랑이었으니 가능했을지도. 그는 평생을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렸으니, 요즘 보기 드문 사랑을 했다. 아마 앞으로도 보기 어려운 사랑을.


나는 그래서 연인을 기다리며 51년을 버틴 주인공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늙었지만 연인 페르미나 다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더 강렬해졌다.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는 여기에 반만 동의한다. 약간은 자기 합리와도 섞여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힘들어서 앞으로 살아가기 어려울 테니까. 사랑을 지키지 못한 건, 서로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자신을 탓해야 한다. 사랑을 탓하지 말고.

<아사코, 2018>

사람들은,

자기가 상대방에게 싫증이 났기 때문에,

혹은 자기 의지로,

또 혹은 상대방의 의지로 헤어졌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계절이 바뀌듯,

만남의 시기가 끝나는 것이다.

그저 그뿐이다.



<요시모토 바나나 _ 하드보일드 하드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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