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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16. 2023

사랑이 위험에 빠지는 순간

사랑할 때 가장 위험한 건, 사랑하는 상대에게서 발견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보지 않고 그 사람 안에 있는 내 모습만 보는 것, 사랑하는데도 여전히 외롭거나 관계에 회의가 드는 건 바로 그 순간부터다.


흔히 상대의 장점을 보라고 한다. 대개 관계가 위기에 빠졌거나 그 사람에 대한 믿음과 생각이 흔들릴 때 주변에서 종종 듣는 조언이다. 관계가 좋을 때는 단점마저도 장점으로 보이기 때문에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까다로운 건 미식가적 기질이 있기 때문이고, 말이 많은 건 세상에 대해 많이 알기 때문이라고, 화를 자주 내는 건 정의감이 투철하기 때문이라고 좋게 받아들인다. 모두 사랑할 때 하는 이야기다.


사랑이 위기에 빠지면 좋게 보이던 그 장점들이 어느 순간부터 모두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그 사람의 모든 언행이 마땅찮다. 한마디로 꼴도 보기 싫어지는 거다.


집에서 어머니가 한평생 함께 살았던 아버지에게 핀잔을 주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대개 아버지가 은퇴하고 집에 있으면서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부터다. 물론 아버지도 그럴 만한 행동으로 이미 어머니의 신뢰를 잃었을 테지만. 지금은 사이가 별로인 아버지 어머니도 한때는 서로를 무척 사랑했었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마지막 장면. 해리가 샐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해리는 샐리에게 말한다. "밖이 71도인데도 춥다는 당신을, 샌드위치 주문에도 1시간이 걸리는 당신을, 헤어진 후 내 옷에 배어있는 향수의 주인공인 당신을, 무엇보다 내가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당신이기에 사랑해.”


그동안 불편했던 상황들이나 서로에 대한 어색한 감정마저도 좋게 받아들여진 샐리와 해리. 긴가민가 호기심에 불과했던 감정이 시간을 통해 숙성되고 난관을 겪으면서 비로소 사랑으로 완성되었다. 좋은 점, 나쁜 점 모두 그 사람 안에 있는 거니, 그 사람 자체에 시선을 돌려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다고 단점에 눈 감으라는 말이 아니다.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알랭 드 보통도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 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고 거기에는 장점뿐만 아니라 약점도 포함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랑하는 이를 내 잣대로 평가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그 사람이 아닌 내 생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니 사랑이 오래가기 어려울 수밖에, 그러니 지금 위기라면 그 사람에게 가졌던 처음 시선과 설렘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기를!!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리저리 흔들린다. 같은 소리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분명히 맞지 않는 말인데도 맞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마음에 의심이 들기 시작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사랑에 회의가 들 때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가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분석하면서 나쁜 쪽으로 생각이 흐른다. 연약한 인간이 누군가를 온전히 그것도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잠시라도 못 보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행동하던 사람들이 결혼해서 온갖 험한 꼴을 다 보고 원수처럼 사는 것을 종종 본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을 텐데. 부족한 인간이 문제인가, 우리를 무뎌디게 만드는 세월이 문제인가. 우리는 인간으로서 한계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상대도 나와 비슷한 연약한 인간임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의지고 노력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하고 그 노력은 의지와 실천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김형경 작가는 말한다. "사랑의 감정은 우연히 일어나서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이고, 용기가 필요한 '노력'이며, 구체적인 '실천'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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