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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14. 2021

나의 별

피천득/인연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 보기도 한다.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에세이 <인연>으로 유명한 피천득 선생의 고백이다. 그의 글을 읽고 오히려 내가 부끄러웠다. 밤하늘의 별을 쳐다본 적이 언제던가? 사랑을 말할 만큼 여전히 감정이 살아 있는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어진 삶에, 상황에,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선 선생처럼 말할 수 없다.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보면, 별을 볼 시간도, 사랑할 시간도 낼 수가 없다. 아니, 시간이 있다고 해도 더 재미있는 것을 찾느라 그런 건 무시하기 쉽다.


어제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그의 회사에서 만든 비행선으로 최초로 우주여행을 했다는 기사를 봤다. 글쎄, 대기권 밖을 벗어나 무중력 상태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우주를 여행했다고 할 수 있을까, 지구 밖 여행 정도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아무튼, 우주를 여행하는 시대에 별은 무엇이며, 내세는 무엇인가, 하는 말을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별을 본다는 것은, 행성으로서 별이 아니라 별이 갖는 의미를 되새긴다는 말일지 모른다. 어릴 적 동경 어린 눈으로 보았던 그 별을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만 별이나, 사랑이 의미를 갖는 것이다.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 별을 바라본다는 것, 진정한 사랑이 희귀해진 시대에 사랑을 언급한다는 것. 선생의 말과 달리 그는 염치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런 순수함을 무시하는 우리가 염치없는 사람이다. 


어제 오후 정기 검진일이라서 병원에 다녀왔다. 사무실에서 한 정거장 정도 거리에 병원이 있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걸어갔다 왔다. 더웠다. 잠깐 걸었는데도 금세 땀이 난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더위에 지쳐 보인다.


그래도 피천득 선생의 글을 떠올리며 주변을 살펴본다. 테헤란로에 뭐가 볼 게 있겠는가, 할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디자인의 건물들과 화려한 전광판이 우선 눈에 띈다. 이 구역에선 그들이 별이다. 지금부터 내가 있는 곳에서 별을 찾기로 했다.




"나는 그저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곧잘 수줍어하고 겁많은 사람, 순진한 사람, 아련한 애수와 미소 같은 유머를 지닌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피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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