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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14. 2021

외로운 사랑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인간은 고독하다.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둘 사이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그게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둘 다 스스로를 견디고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으니까.


우리는 왜 고독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가족과 산다고 고독하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고독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의문을 갖고 있을 때 읽었던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이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스물두 살의 봄, 스미레는 난생처음 사랑에 빠졌다. 광활한 평원을 가로지르며 돌진하는 회오리바람처럼 격렬한 사랑이었다." 소설은 사랑 이야기이다. 특이한 건, ‘고독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이다.


주인공은 스미레를 사랑하지만, 스미레는 주인공을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스미레는 연상의 여인인 뮤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뮤는 스미레를 사랑하지 않는다. 짝사랑은 아니지만,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뮤하고 떠난 여행에서 스미레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어디로 간 건지, 그저 이쪽 세계가 아닌 저쪽 세계로 건너갔다고 말하고 있을 뿐.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기 어렵다. 약간은 판타지 같은 이야기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결국 사랑을 고백하지만 상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아 절망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어째서 모두 이렇게까지 고독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고, 각각 타인의 내부에서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까지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행성은 사람들의 적막감을 자양분 삼아 회전을 계속하는 것일까?


나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 채 지구의 인력을 단 하나의 끈으로 삼아 하늘을 계속 돌고 있는 스푸트니크의 후예들을 생각했다. 그것들은 고독한 금속 덩어리로서, 차단막도 없는 우주의 암흑 속에서 문득 마주쳤다가 스쳐 지나가고 그리고 영원히 헤어져 버리는 것이다. 주고받는 말도 없이,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302 - 303p)





생각해 보면, 외롭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고독해 보이지 않으려고 남들 앞에서 웃고, 그들과 어울리기도 했지만, 나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언제까지 고독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혹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몰라, 책을 읽었지만, 오히려 더 고독해지고 말았다. 외로움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책은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스미레도 그걸 견디지 못하고 저쪽 세계로 갔는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아무나 그 세계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키는 어떻게 해야 그 세계로 옮겨갈 수 있는지, 거기 가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쪽 세계가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그도 몰랐겠지만.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그런 줄거리가 아닌 인물들의 심리였다. 스미레를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뮤의 사랑을 얻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스미레의 마음을,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남의 일인 양 넘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을 함께 하고 있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멀리서 보면, 그것은 유성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각자 그 틀 안에 갇힌 채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죄수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거죠.


두 개의 위성이 그리는 궤도가 우연히 겹칠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고 어쩌면 마음을 풀어 합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잠깐의 일이고 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 속에 있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완전히 타버려 제로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197p)






이게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함께 있는 순간은 잠시고, 대부분의 시간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거기에 지쳐 결혼해서 함께 살아보지만 그것도 잠시, 서로의 일에 쫓겨 같이 있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어쩌면 ‘혼자된 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따라 사랑하는 이와 깊어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도 이렇게 말했다.


“종종 사랑 자체도 더 풍성한 사귐의 축복을 위해 고통과 눈물 속에서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사랑에 빠지면 좋지만, 고통스러울 때도 많다. 항상 같이 있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혼자 있으면 오직 그 사람만 생각난다. 어쩌면 그 부재의 시간을 통해서 사랑이 깊어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나마 사랑에 성공해서 결혼하는 것이 덜 외로워지는 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알베르 카뮈도 그의 소설 <페스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하는 남자, 가난, 서서히 막혀가는 장래, 식탁에 앉아도 할 말이 없는 저녁때의 침묵, 그러한 세계에 정열적 사랑이 파고들 여지는 없다."


같이 살아도 별 대화 없이 사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서로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대화,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 대화의 단절, 끝없는 오해, 함께 살지만 따로 사는 삶... 결국 함께 살고 싶어서 결혼했지만, 그전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그러니 외로울 수밖에.


이렇게 소설은 인간이 근원적으로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라는 책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다. 고독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아무래도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아마 산다는 것이 그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자기 속에서 자라나지 않는 것이라면 결코 오래도록 지니고 있을 수 없는 법이야. 게다가 폭풍우 속에서는 무엇이든 자라기 힘들어. 성장은 고독에 찬 공허한 밤에만 있을 수 있는 거지.... 그것도 절망하지 않을 때만 말이야."


<레마르크 _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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