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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08. 2023

메아 쿨파(mea culpa)

귀스타브 플로베르 / 마담 보바리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글이다.


본격적으로 봄이 온다는 3월, 우리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누군가는 2월의 연장선에서 그냥 루틴한 삶을 반복할 것이고, 누군가는 뭔가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 애쓸 것이다. 결국 의지의 문제다. 일어나는 일에 피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일어나기를 바라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그래서 삶이 기쁨과 기대로 충만했으면 좋겠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엠마는 지루한 결혼 생활을 견디다 못해 뭔가 낭만적인 변화를 꾀하고 싶어 했다. 방향이 욕망적이어서, (욕망을 추구한 결과가 대개 그렇듯) 결과가 좋지 않아서 문제였지만. 현실을 벗어나려는 그녀의 노력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메아 쿨파(mea culpa)'라는 말이 있다. ‘내 잘못을 통해서’라는 뜻의 라틴어로 가톨릭교회의 고해성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내 잘못을 인정한다, 내 탓이다'라는 뜻으로 반성과 회개의 의미를 갖고 있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 투성이다. 엠마처럼 원하지 않는 상황에 던져질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조리한 세상이지만 선뜻 이 모든 것이 다 내 탓이라고, 내 잘못이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억울해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그 누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만 치사해질 뿐. 그러니 내 탓이 무엇인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혹시 아는가. 조금은 바뀔지. 상황이 바뀌지 않더라도 상황을 대하는 내가 바뀔 수 있다.


엠마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비극으로 끝난 그녀의 상황이 온전히 그녀 탓만은 아니었지만. 따지고 보면 완전히 내 탓도 다른 사람의 탓도 아닌 것이 더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먼저 내 탓이 무엇인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내가 성숙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 삶 속에 'mea culpa'가 얼마나 많은 지로 알 수 있다. 


Now, mea culpa, Lord! I me repe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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