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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11. 2023

봄이 왔는데 나는 알지 못하고

요 며칠, 한낮에 외투를 벗어도 될 정도로 따뜻했다. 아직 3월 초, 따뜻하다는 표현이 좀 이른 것 같지만, 딱히 이맘때의 날씨를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계절의 변화에 맞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다니, 앎과 감성이 많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날씨가 풀리니 무엇보다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미세먼지로 파란 하늘을 볼 수 없는 게 좀 아쉽지만, 한겨울의 추위에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봄과 함께 피고 있는 새잎과 같이,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다. 이제는 사무실에서 카디건이나 스웨터를 굳이 입지 않아도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이렇게 봄이 오는 것인가? 소리 소문도 없이. 하긴 계절은 그때와 시를 알아서 스스로 변하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표정에서 봄이 왔음을 뒤늦게 알고, 이제 봄이구나, 하면서 계절보다 한참 둔한 나를 탓한 적도 여러 번이다.


집에도 가지 못하고 밤새워 일할 때가 있었다. 그때는 계절이 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것도 느낄 여유가 없이 바쁘게 살았는데, 밤새워 일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은 왜 이렇게 무심하게 사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더 무뎌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봄은 마음으로부터 오는 거였다.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면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별생각 없이 무심하게 살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어렵다. 마음만 있으면 길가에 핀 새순이나 나무의 미세한 변화, 무엇보다 사람들의 바뀐 표정에서도 봄이 왔음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을 텐데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화단에 연초록의 새순이 핀 것이 눈에 띄었다. 새싹은 왜 이렇게 색깔이 예쁜지,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분마저 초록초록해진다. 언뜻 연약해 보이지만, 겨우내 언 땅에서 생명을 지켰으니 강인한 생명력에 고개가 숙여졌다.


바쁘게 살라고 하지만 바쁜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일이 없으면 그것도 문제겠지만, 일과 쉼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 그게 여유 있는 삶이다. 나는 이 봄에 피어나는 새잎을 보면서 삶의 여유를 찾고 싶었다.

최영미 시인이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어 더욱 커지는 당신의 빈자리, 봄꽃들을 보기가 괴롭다'라고 한탄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내 마음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심함 그리고 삶과 세월이 주는 아름다움에 무뎌진 나를 보면서, '당신의 빈자리'를 생각할 여지조차 갖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겨울은 내 머리 위에 있으나 영원한 봄은 내 마음속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알베르 카뮈가 한 말이라는 설도 있다. 정확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의미!! 삶이 주는 어려움과 고통은 겨울처럼 내 머리 위에 머물러 여전히 나를 괴롭히지만, 내 안에는 고통이 침범할 수 없는 봄이 있으니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가라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봄'은 나에게나 당신에게 희망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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