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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14. 2023

RIP ㅡ 오에 겐자부로

일본이 낳은 살아 있는 지성 '오에 겐자부로(おおえけんざぶろう, 1935 - 2023)'가 지난 3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그의 대표적인 저서 <만엔 원년의 풋볼>을 읽고 브런치에 서평을 쓴 것이 엊그제 같은데...



고인은 일본의 인권 문제와 원전 문제를 비판해 온 대표적인 진보적인 성향의 문인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의 평화 헌법을 지키려는 ‘9조의 모임’ 등을 통해 치열한 현실 참여 활동을 펼친 바 있고,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나 국민이 충분히 사죄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 국가가 사죄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자이 오사무가 중퇴한 도쿄 대학 불문과 출신으로 약관 23세의 나이인 1958년 <사육>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당시 두 번째 최연소 수상자였다.

1994년엔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 수상) 이후 26년 만에 <개인적 체험>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인간의 심연에 내재한 불안과 고통을 환상적인 필체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의 글은 복잡하고 난해하기로 이름이 높다. 스스로도 '악문'이라고 칭할 정도로 읽기가 쉽지 않다. 나도 '만엔 원년의 풋볼'을 읽으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책을 읽다가 중단하기를 수차례, 끝까지 읽어내기 위해선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다 읽고 난 후에는 묘한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여전히 많아 나의 부족한 지성에 대해 자책한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집에 그가 쓴 다른 책들도 있지만 아직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 쓰라린 기억 때문이다.


그의 글은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 자폐증 환자인 장남 '오에 히카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그의 대표작 '개인적인 체험'은 실제 장남이 태어났을 때의 상황을 기반으로 해서 쓴 소설이다. 폭력 앞에 무력한 인간 그리고 사회적인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그의 소설의 주된 주제였다.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받아야만 하는 상처 그리고 회복에 대해 그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2015년, 평화 문제에 전념하겠다며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했을 때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렇게 유명을 달리하니 더 안타깝다. 그의 저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아직 백 살까지는 시간이 있지.

소설도 주제보다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면 쓸 생각이야.”


“끝까지 못 찾을 수도, 있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소설가로 살겠다는……”

“그렇게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거다.”




무엇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 그는 이 소설에서 기존 소설 방식과는 다른 형식을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상처받은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고자 했던 그의 필생의 주제의식은 여전히 이 소설에서도 빛났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나오는 글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야기를 복잡하게 하지 않으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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