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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21. 2021

오에 겐자부로 ㅡ 상처와 회복

오에 겐자부로 / 만 엔 원년의 풋볼

얼마 전까지 버거운 책을 읽었다. 여기 남기는 건 독후감도, 후기도 아니다. 그럴 능력이 내겐 없다. 다만 읽고 난 느낌이라도 남기고자 할 뿐이다. 이해할 수 있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 한계를 다시 한번 되새기기 위함이기도 하다. 우리 인생 역시 그렇듯.


흔히 사람들은 책을 읽은 다음, 줄거리를 요약하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교훈을 찾고자 한다. 그러려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닌가. 저자 또한 책에 담긴 자신의 고민을 이해해 주기를 바랄 터이다. 그러자면 이해의 폭이 넓어야 하고, 배경지식 또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두 가지 모두 실패했다. 이해하지 못한 건 당연하다.




오에 겐자부로(おおえけんざぶろう)의 <만 엔 원년의 풋볼>을 선택한 건, 작가가 일본 사회가 존경하는 뚜렷한 소신을 가진 지식인이라는 점과 무엇보다 이 책이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대신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고통과 상처를 통해 밀도 높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의 고통까지 이르러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작가 또한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그가 안고 살아가야 했던 '고통'때문이었다고 한다. 그가 글을 씀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처 입은 또 다른 사람들의 치유의 의미로 이 작품을 썼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은 그 고통에 대한 사색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못생긴 외모에 한쪽 눈을 실명한 주인공 미쓰사부로와 학생운동가인 그의 동생 다카시,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인 주인공의 아내 나쓰코. 그들 간의 갈등을 혼란스러운 전후의 상처 속에서 그려내고 있다. 그들이 함께 가게 된 곳은 만 엔 원년(1860년)에 농민 봉기가 일어난 일본 내륙의 골짜기 마을이다. 그곳에서 다카시는 풋볼 팀을 만들어 마을을 장악한 조선인에게 대항하고, 형은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한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갈등을 겪는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다.


살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어쩌면 사는 것 자체가 상처를 받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나만 받는 상처가 아닌데, 내 상처만 아프고 타인의 상처에는 둔감하다는 점이다. 고통은 개별적이기 때문에 동정까지는 모를까, 타인의 상처를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치유된 상처도 있지만, 그냥 안고 가야 하는 상처도 있다.


어떤 상처는 드러냄으로써 치유가 되기도 한다. 아마 소설 속 인물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작가 역시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정직하게 응시하고 드러내려고 한 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 뚜렷한 답은 없다.    


아무튼 이 작품에 대해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내가 이해하는 건 그들이 상처를 받았고, 서로 갈등을 겪어내면서 상처를 치유해 갔다는 정도다. 어쩌면 치유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건, 작가의 유려한 문체와 번역의 탁월함이다. 만연체이지만, 이렇게 글을 쓸 수가 있구나 할 정도로 필력과 문장력이 대단하다.




‘나는 갈기갈기 찢겨져 있다고 느꼈어요. 생각해 보면 언제나 폭력적인 인간으로 나를 정당화하고 싶은 욕구와 그와 같은 자신을 처벌하고 싶은 욕구로 분열되어 살아왔지요. (……) 안보 투쟁 때 내가 굳이 폭력 장소에 돌입하는 일을 하기로 한 것은, 그와 같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폭력적인 자신을 폭력적인 인간의 틀에 넣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왜, 그와 같은 자신이라고 다카는 말하는 거죠? 어째서 자신을 폭력적인 인간이라고 하는 거죠?’ 그때까지 내내 침묵하고 있던 아내가 슬픈 듯이 물었다. ‘그건, 더 살아갈 생각이라면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는 그런 경험과 연결되어 있어요.’ 다카시는 엿듣고 있는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드는 침묵 끝에 말했다.




이 책을 다 이해하지 못한 건, 너무 오랫동안 읽어서 집중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내심이 부족했다. 퇴근 후 피곤한 상태에서 읽다 보니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이 소설은 내게 독서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읽기 쉬운 책만 읽을 수 없다는 것,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어려운 책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삶의 자세와도 관련이 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책을 읽는데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독서를 통해 나는 뒤늦게 삶의 자세를 배워가는 중이다.


오에 겐자부로 역시 <읽는 인간>이라는 책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를 인용해 독서로 얻는 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고 말한다. “어설프고 얄팍한 수용이 아니라, 전인간적인 경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나를 뭉클하게 하고, 활력을 느끼게 하고, 흥분시키는 것이니, 편리하게 차트화한 지식 정보를 넘겨주는 고요한 것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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