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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16. 2023

삶을 온전히 누리는 비결

팡차오후이 / 나를 지켜낸다는 것

어젯밤, 독서메모에서 몇 년 전에 읽었던 중국 칭화대학교 역사학과 팡차오후이 교수의 저서 <나를 지켜낸다는 것>의 한 부분을 발견했다. 약간 길지만 내용이 이렇다.


"우리가 생활 속의 1분, 1초를 즐겁게 누려야 하는 이유는, 인생이란 것이 본래 무수한 일상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근할 때나 길을 건너는 매 순간이 다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모두 삶의 풍경이고 생명 속에서 고동치는 음표임을 인식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는 이유는 주로 마음에 걱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느긋하게 일을 처리할 시간을 줄여 그 시간에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박을 느끼는 데에는 중요한 오류가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하나의 일을 끝내는 동시에 또다시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고, 연이은 일에 파묻혀 자신을 잊게 되고 말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생활을 향유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향유할 마음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발걸음을 생명의 리듬에 맡기고 일거수일투족을 그 리듬에 맞추어 살아가야 합니다."

영화 <Tar>

우리가 마주치는 매 순간순간이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풍경 그 자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걷는 것이 어떤 목적지를 가기 위한 수단이거나 심지어 건강을 위함이라면 걷는 과정에서 느끼는 오감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치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몸으로 느끼는 감각이나 풍경은 걷기의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동안 헤드폰을 머리에 쓰거나 에어팟을 귀에 꽂고 산책을 한 적이 있었다. 귀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 때문에 걷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고 머리가 무거웠다. 오로지 걷기 그 자체에 몰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행위에 집중하면 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자연스럽게 해소되는데, 음악 때문에 머리가 쉬지 못한 탓이다. 몸 따로 머리 따로 노니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음악을 듣지 않고 가급적 걷는 데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어디 걷기만 그런가?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어떤 행동, 지금 내 곁에 있는 누군가, 지금 이 순간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장소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삶을 온전히 누리는 비결이고 나를 지켜내는 길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 글을 읽고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고. 삶의 충만함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을 향유하는 선택과 온전한 집중에 있다고. 삶의 풍경은 내가 찾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다.






*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Cello Concerto No. 2 in D Major, Hob.VIIb:2: III. Allegro

Christian-Pierre La Marca · Julien Chauvin · Le Concert de la Lo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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